생곡저수지를 돌아 내려온다. 연화봉과 옥정봉을 이어 막아 물을 가둔 저수지다. 저수지가 생기기 전에 피리골에선 딸을 시집보낼 때 쌀밥 세끼를 지어 먹여 보내면 부모의 도리를 다했다 할 정도로 쌀이 귀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에서 저수지를 막는다고 할 때 모두가 팔을 걷어붙일 정도였다.
저수지는 꼭 필요했다. 이 저수지 물은 상군두리 뜰과 도찬리, 용터, 사잇말을 적시고, 잠관(潛管)과 교관(橋管)을 묻어 판관대, 검산리 응달말, 둔지에까지 물길이 닿는다. 강원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저수지다. 작은 다리골, 큰 다리골, 상비, 배나무골, 도실암 등 여러 골짜기의 물을 받아들인다.
옛날부터 연화봉 어딘가에 연화부수(蓮花浮水)의 명당자리가 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명당자리를 찾아 나선 미약골처럼 연화봉 꼭대기까지 올라 묘를 썼다고 한다. 저수지를 막고 나서도 사람들은 명당을 찾아 나섰다고 한다.
연화봉은 명당이었다. 옥정봉과 잇대어 둑을 막고 그물을 받아 농사를 지으니 자연 먹거리가 좋아졌다. 명당이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주는 자리이거늘 이보다 더한 명당은 없을 터이다. 연화부수- 연화봉이 한송이 연꽃으로 피어 오른다.
저수지를 돌아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아름다운교회가 있다.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목회활동을 하시는 김진택 목사는 서석의 발전을 위하여 애쓰고 있다. 서석은 몰라도 ‘도실암곰취’는 알 정도였고, 또 옥수수 찐빵을 개발하여 상품화했다.
마을에 대한 유래와 옛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수집하는 등 홍천사랑에 남다른 분이다. 그 교회 뒤로 보이는 골짜기는 처녀바위 골이고 옥정봉으로 이어진다. 그 아래 골짜기는 회가마골이다. 회를 굽던 가마터가 있었다 하고, 도찬동과 간촌 사이를 가르는 듯한 골짜기는 느릿골이다.
간촌에서 개울 건너편 골짜기는 법밭너미이다.
연화봉은 지장보살의 법력과 법전(불경)이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법밭너미 아래골짜기는 솔골이다. 솔거골이라고도 하는데 난리가 났을 때 마을사람들이 식구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피난 왔다하여 그렇게 부른다한다. 솔골을 지나 개울을 따라 내려오면 콘크리트로 잘 막아놓은 보가 있다. 옛날부터 중보라고 했는데 군두리로 흘러가는 생명줄이다. 군두리에 장이 서고 삼생국민학교(지금의 삼생초교-생곡리로 이전했다)가 있던 시절부터 군두리 너른 뜰에 대던 물줄기였다. 군두리에는 물이 귀했다. 너른 땅을 두고도 물이 없어 보를 팠다. 지금은 상보(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물), 중보, 하보(삼생초교 위쪽-대월의 물을 받는다)가 있어, 물걱정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개울을 따라 내려오니 미약골과 피리골의 물줄기가 한 몸을 이룬다. 무당소는 두 물줄기가 만나 이루는 소(沼)이다. 서석 옥수수 찐빵 판매소 뒤쪽이다. 무당이 빠져 죽었다고도 한다. 지금은 물이 많지 않지만, 강폭이 제법 넓은 걸보니 홍수가 났을 때 흘러드는 물을 짐작할만하다.
이튿 날 다시 길을 나섰다.
검산으로 들어섰다. 검산에는 두 개의 큰 골짜기가 있다. 하나는 아미산(960m)에서 내려오는 효제곡(조조울, 조제월이라고 부른다)이고, 또 하나는 폭포산, 삼신산을 휘돌아 내려오는 용오름마을이다.
서석 중고등학교를 지나 언덕배기를 내려오면 삼거리가 나온다. 최근에 새로 난 길인데, 삼거리가 생기기 전에 이곳에는 주막이 있었다 하여 주막거리라고 했다. 오른쪽으로 돌면 청량으로 가고 왼쪽으로 돌면 검산으로 들어선다. 나는 일부러 풍암 앞뜰을 적시는 수로를 따라 흥얼대며 걷는다.
수로는 조가동을 지나 아미산 주유소 앞길을 건너 산 밑을 돌아 조조울(조제울) 예술촌 아래 강가에 닿았다. 수로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 하나는 ‘들미나무보’이고, 또 하나는 ‘이반보’이다. 들미나무보는 그리 크지 않고, 도랑도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이반보는 수로도 잘 손질되었고 물도 실했다. 언제 보를 만들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일제 강점기에도 봇물은 흘렀고 풍암리 2반의 논을 적셨다. 그때 풍암 앞뜰은 2반이었고 2반 사람들만 물을 댔기 때문에 ‘이반보’라고 했다 한다. 지금은 관을 놓고 보를 막았던 자리에는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보를 막았다. 보를 치는 부역도 지금은 필요 없다. 그 물줄기를 따라 논이 많이 생기고 모두가 물을 나누어 받는다.
‘검산(儉山)’은 큰 산들이 검은 가마솥 같이 빙 둘러서 있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멀리 응봉산이 둘러서고 응봉산은 다시 아미산을 품는다. 아미(峨眉)는 아리따운 여인의 눈썹을 말하는데, 삼형제 바위와 바람부리를 품는다. 해질 무렵 산 노을에 젖은 산은 여인의 눈썹처럼 그려지는 능선의 자태가 아름답다. 또한 조용하고 풍만하다. 아미산은 효제곡, 검산, 풍암을 품는 모산(母山)이다.
나는 효제곡(조조울, 조제월)으로 들어섰다. 아미산 품안에 든 마을이다. 효제곡으로 불리게 된 것은 경주 김씨의 가문을 중심으로 한 마을사람들 간의 이웃사랑에서 비롯된다. 부모를 모시는 효심과 형제간, 이웃간, 고부간의 사랑과 우애가 깊어 오래 전에 마을사람들이 효제곡(孝悌谷)으로 부르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효제곡 입구에는 백여년이 넘는 소나무 숲이 있다. 일제 강점기 때도 상처를 받지 않고 잘 보존된 숲이다. 마을의 중심이다. 이곳을 솔무정이라 부른다. 성황당이 서있어 더욱 시골스런 풍경을 자아낸다. 그러나 뒤로 돌아가면 다르다. 한때 군부대가 주둔하였으나 지금은 떠나 텅 비어있고 돌담위로 가시 철망과 검은 비닐이 쳐 있어 더욱 흉물스럽다.
솔무정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골짜기는 옹기점골이다. 옹기를 굽던 가마터는 골 안에 있었고 옹기점은 군부대 안에 있었다고 한다. 군부대를 지나면 들산들머리다.
이쯤에서 고개를 들어 아미산을 바라보면 넉넉한 산의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미산에서 뻗어내린 긴 능선이 두 갈래로 길게 이어진다. 아미산을 오르는 마을길은 외줄기다. 개울을 따라 길도 간다. 오른편쪽으로 집들이 듬성듬성 서있는데 버들구미이다. 진펄이이어서 버드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버들구미에는 오르막 고개가 있고 고개에 오르면 실버타운이다. 그러나 이 고개를 넘어 실버타운으로 가지는 않는다. 인적이 끊긴 탓에 숲이 우거지고 길이 없다.
나는 외길을 따라 석장골 입구까지 왔다. 흙길이고 개울 또한 가래나무, 신나무, 붉나무, 버드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물은 암반 위를 흘러내린다. 도롱뇽 알이 보였다.
석장골로 들어가면 ‘오빠골’을 만난다. 이름이 재미있어 다시 물어보면 웃밭골로 들린다. 오빠골을 넘으면 ‘진장동 오빠골’이다.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은 덜 피로하다. 밤나무골입구까지 어느새 온 것이다. 그 안으로 이어지는 전신주가 굽이를 돌아간다. 누군가 살고 있나보다.
아미산 삼형제 바위가 눈앞에 다가선다. 산등성이는 가파르다. 오르는 길이라 숨이 차다.
길은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진다. 아미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도 두 갈래 물줄기도 두 갈래다. 갈림길에 아미산 등산지도가 담긴 이정표와 펜션으로 가는 화살표가 나무기둥에 매달려있다. 등산로는 고양산까지 이어졌다. 누가 지도를 보고 묻는다. 왜 서석을 흐르는 강이 내촌천이냐고. 나도 모른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은 ‘승방터’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절터골이고, 그 안막으로 올라가면 구라우골(굴 아홉골)이라고 한다. 왼쪽으로 가면 ‘유바골’이다. 어디로 오르든지 아미산으로 이어진다. 유바골로 오르기로 했다. 아미산이 바로 머리 위로 다가와 선다. 장엄하지도 않고 위협적이지도 않다. 960m의 단아한 여인을 닮은 산이다.
아미산을 바라볼 때 낮은 능선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바위가 세 개 서있다. 멀리서 보면 집을 나선 삼형제 같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바위이다. 아미산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선 사랑받는 산행길이고 쉬었다가는 곳이다. 왼쪽에는 바람굴이 있는데 한여름에도 서늘한 바람이 나온다고 한다. 하지 무렵까지 얼음이 녹지 않고 있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화전민들이 떠나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던 골짜기까지 길은 닿아 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을 찾아온 사람들은 길을 내고 그곳에 펜션이나 집을 지었다.
자연으로 돌아오고, 또 쉴 곳을 찾아오는 사람은 그리움을 아는 사람이다. 산의 정취를 느낄 줄 알고 자연의 향기와 넉넉함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꽃의 아름다움과 풀잎의 향기를 아는 사람이다. 정을 알고 나누는 사람이다.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자연을 닮은 마음의 집. 도시적 삶을 벗어나 산골의 정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촌스러움’을 정말 맛볼 수 있다면 다시 찾아오고 싶은 곳.
땅거미가 드는 산의 풍광은 고요하니 적막하다. 나무들도 곧 산그늘에 들어 잠을 잘 것이다. 어둠에 깃든 아미산이 너른 가슴으로 나를 감싸 안는다. 나도 잠시 어둠처럼 깃든다. 물소리만 별처럼 깨어 먼 길을 가고 있다.
내일은 폭포산을 오를 것이다.
글·사진 허 림(시인)

저작권자 © 홍천뉴스 / 홍천신문 홍천지역대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