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들어 장백골로 세간을 나고 거기서 화전을 일구며 젊음을 보낸 이근재(70)씨는 지금 구부소께 살고 있는데, 미약골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신 분이다. 아내와 단둘이서 살고 계셨다.
사월이 지나 오월이 돼야 서리가 걷힌다는 미약골은 바로 내면과 서석, 평창 봉평의 경계를 이루는 ‘모두부치(주걱대기)’-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흥정능선의 최고봉-에서 시작된다. “‘모두부치’는 골이 많은데, 벽을 이룬 듯한 저 능선이 흥정능선이지. 미약골은 서석 쪽을 향하여 내리 뻗은 중앙능선을 따라 내려오거든. 근데 말이야, 능선을 다 내려오면 거기가 마당대기지. 미약골에서 화전민이 제일 많았지. 나물도 많고, 약초도 많았지. 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라 심(삼)을 캐는 사람들도 수두룩했으니까. 그리고 그 위로 쭉 올라가면 쿨렁쿨렁하는 ‘진펄’이 나오지. 거기는 아무것도 부쳐 먹지 못 했는데, 지금은 숲이 우거져 어떨지 몰라.”
“그래요?”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다. 바로 ‘진펄’이다. 홍천강의 발원지를 찾아가는 나그네의 귀에 솔깃하니 감기는 것이었다. 진펄이면 늪이 아닌가? 늪은 샘이고, 그 샘은 발원수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마당대기를 지나면 나온다는 ‘진펄’.
지금 내가 오르고 있는, 아니 찾아가고 있는 곳이 ‘마당대기’ 그 위에 있다는 ‘진펄’이다. ‘진펄’-그 말 한마디가 먼 길 마다않고 오르게 한 것이다.
먼 길이지만 볼거리가 꽤 있다고 했다.
바로 그 촛대 바위다.
층층이 낙엽을 쌓아올린 불개미집처럼 솟아오른 바위기둥. 물푸레나무와 신갈나무, 고로쇠나무, 신나무, 박달나무가 쭉쭉 뻗은 숲을 뚫고 몸을 솟구치듯 우뚝 선 바위. 산봉우리에 비스듬히 뿌리내린 소나무가 푸른 불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깊은 사연이 왜 없을까?
“촛대바위는 아마도 거기에 살던 사람들이 붙인 이름일 게야. 콩이며 조, 옥수수를 이고 지고 서석장을 보러 다녔거든. 다른 길은 없고 이 골짜구니를 오르내렸으니께. 새벽같이 나서도 여기에 들어서면 어두웠지. 또 무섭기도 했구. 그래서 촛불하나 밝혔으면 좋겠다는 바램에서 붙인 이름인지도 몰라”
그렇다. 이름에는 어떤 소망이나 희망, 미래가 담겨있다. 촛대바위도 그런 소망이 담겨있는 것이다. 촛대바위는 산 능선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다.
다시 배낭을 메고 일어선다. 마당대기까지는 멀다. 진펄은 거기서 더 올라가야한다.
양지바른 산비탈에는 노루귀가 하얀 꽃잎을 열어 제치고, 바람꽃이 수줍은 듯 꽃술을 내민다. 응달진 산기슭엔 눈이 쌓여있지만 봄은 머뭇거림 없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동박나무(생강나무) 꽃망울이 통통하니 물이 올랐다.
나비도 난다. 뿔나비다. 아랫입술이 툭 튀어나와 뿔처럼 보인다는 나비다. 홍천하고도 오지인 미약골. 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는 이 골짜기에서, 모두부치 산기슭엔 아직도 눈이 쌓여 있는 이곳에서 겨울을 견뎌냈다는 것에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나비를 따라 올라간다. 일부러 발을 구르기도 하면서 흥얼거린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놀란 듯 날아가는 새가 있다. 주먹만 하고 까맣다. 물까마귀다. 청정계곡에 주로 살며 물고기를 잡아먹는 새다. 새도 계곡을 따라 날아올라갔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물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요란하지도 않으면서 골짜기의 적요를 흔들어 깨운다. 문처럼 양편에 선 바위벼랑에 부딪혀 울려나는 소리가 종소리처럼 은은하다. 암석폭포다. 거세지도 않고 웅장하지도 않다. 물빛과 물소리와 물 항아리(소沼). 선녀들을 유혹했을 법도 하고, 신선들도 내려와 노닐고 싶어 했을 것 같다.
물소리를 뒤로하고 얼마나 올랐을까. 세모꼴의 하얀 바위가 햇살에 반짝인다. 그리 넓지는 않은데 화살표 모양을 하고 양편 골짜기를 가리키고 있다. 오른편은 폭포수골이고 왼편은 마당대기로 오르는 원골이다. 저 위에서 목을 좀 축이자. 머리를 숙여 물을 마시고 빵과 바나나로 요기를 했다. 아직 골짜기를 하나 더 지나 올라가야한다.
폭포수 골에서 가래나무 골까지는 물소리만 가득하다. 지난 큰물 때 떠내려 온 나무 등걸이 계곡에 가로 걸쳐 있다. 쓰러진 고목엔 이끼들이 덮여있다. 숲은 숲을 불러 우거진다.
물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오른쪽은 가래나무 골이다. 이 골짜기를 따라가면 ‘모두부치’가 나온다. 다른 한골은 ‘마당대기’로 이어진다. 가래나무 골에서 흐르는 물이 더 실하다. 그러나 수량이 변함없이 흐른다는 마당대기로 길을 잡았다. 가파른 비탈의 골짜기를 기어 올라갔다. 그런데 어인일인가? 낙엽송(일본이깔나무)이 이어진다.
여기가 바로 ‘마당대기’로구나. 화전민이 화전을 일궜다는 비탈이다. 1968년 화전정리 사업으로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대처로 쫓겨나고 그 터엔 낙엽송을 심었다. 간벌작업을 하는 중인지 베어진 나무들이 마구 엉켜 있다. 나이테를 세어보니 사오십년쯤 된다. 여기저기 버려진 소주병, 장갑, 우유 곽, 빈 음료수 캔이 보인다. 쓰러진 나무 등걸을 넘고 또 넘는다. 능선으로 오르면 좋을까하여 능선에도 올랐다. 멀리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터지지 않던 손전화가 울린다. 다시 내려와 낙엽송 밭을 가로질러 올라갔다.
물줄기도 가늘다. 진펄이 멀지 않은 것 같다. 한참동안 숲을 헤쳐 나왔다. 낙엽송 숲에 이어 산버드나무, 신나무, 느릅나무, 물푸레나무들이 숲을 이룬 가운데 늪지식물인 산갈대, 줄풀, 관중 등이 듬성듬성 보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성급하게 발을 들여 넣었다. 쿨럭 빠지고 말았다. 여러 군데 수렁을 이루어 아무 쓸모없었다는 ‘진펄’.
늪이었다. 완전한 늪의 형태를 이루진 않았지만 늪의 형성과정을 보여주었다. 숲이 우거져 안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듬성듬성 물이 고여 있고, 골짜기는 보이지 않았다.
홍천강은 바로 ‘진펄’이라는 ‘늪’에서 발원하고 있다.
‘모두부치’에서 뻗어내린 능선이 치마 주름처럼 흘러내리다가 완만하게 비탈을 이룬 ‘진펄’.
나는 ‘마당대기 늪’이라 이름을 붙였다. 용천수가 솟는 것도 아니고 연못을 이른 것도 아닌 진펄. 조금은 허망했다. 그러나 물이 모여 진펄을 이루고 있다는 것. 거기서부터 400리를 흘러가는 홍천강 물길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해도 기울고 어둑어둑하다. 물줄기처럼 그렇게. 이제 이곳에서 다시 내려간다.
‘마당대기 늪’에서 시작하는 물줄기는 화전민들이 살았던 마당대기를 지난다. 낙엽송 간벌작업이 한창인 이곳에서 물이 기억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가난했던 시간이지만, 홍천강의 발원지를 찾아 나선 나처럼, 시간의 무늬가 남아있는 이름들을 다시 불러본다. ‘모두부치’,‘진펄’, ‘마당대기’.
‘마당대기 늪’을 떠난 물은 가래나무골 물과 합쳐지고 흐르다가 폭포수 물을 받아들여 암석폭포를 이루고, 촛대바위를 돌아 흐른다. 미암동 혹은 미약골이라 부르는 홍천강 발원지.
돌아다보니 어둠이 골골이 깊다.
글·사진 허 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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