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이다. 하루 햇살을 받아 푸른빛이 서린다. 산에는 동백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산수유꽃이 화사한 빛을 더 한다. 산기슭엔 진달래가 한창이다. 논두렁 밭두렁엔 꽃다지도 꽃대를 밀어 올린다. 봄의 들녘은 이제부터 푸른빛으로 무르익는다.
홍천을 휘돌아 흐르는 강. 홍천강은 큰 강이다. 덩치 뿐만 아니라, 많은 샛강을 거느린다. 산 구비 구비 마을 안팎을 돌아 흐르는 샛강을 받아들인다.
발원지를 찾아 나서면서 만나는 샛강의 물살이 제법 거칠다. 남산교를 지나 화양강 지표석이 서 있는 제방을 따라 올라가면서 화양교를 넘어선다. 대기고개 못 미처 흘러드는 샛강이 눈에 들어온다. 갈마곡리 큰골에서 흘러드는 샛강이다. 개울이란 말이 더 정감이 간다. 강둑을 따라 걸어 올라가니 홍천여중과 미소지움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최근에 들어선 건물들이며 아파트 단지다. 4차선도로가 휑하니 뚫려있다. 여중 앞을 지나 강둑에서 막혀있다. 강 한가운데선 공사가 한창이다. 홍천 행정타운이 들어선다는 태학리와 연결하는 다리공사다.
식수원인 취수장을 지나면서 강둑에 상수원 보호구역의 철조망이 가설돼 있다. 강으로 들어설 수 없다. 백로들이 얕은 물가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청둥오리 떼가 물가의 풀숲을 헤치며 먹이 사냥에 열중이다.
연봉다리를 기점으로 결운리에서 제법 큰 샛강을 만난다. 만대산과 오음산, 먹방산에서 흘러드는 성수천과 공작산에서 흘러드는 덕치천 물줄기가 소구니에서 한 줄기를 이루어 여우고개, 이괄바위를 돌아 흘러든다.
수타사의 풍경소리와 독경소리를 실어 나른 듯 맑고 제법 세찬 물줄기를 뒤로하고 와동리 홍천강휴게소를 지날 무렵, 건너편 여내골, 만내골에서 흘러드는 개울과 공작산에서 흘러드는 와동, 굴운 저수지에서 흘러드는 개울을 만난다.
개울은 마을의 젖줄이다. 빨래터였고 한여름 등줄기를 적신 땀내를 씻어내며 더위를 식히던 천렵장소 였다. 한여름에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 풍천천이다. 구성포 신내 사거리에서 풍천천을 맞아들인 홍천강. 한여름의 밤풍경은 오막살이 같은 텐트의 불빛으로 더욱 시골스럽고 물위에 던져놓은 밤낚시의 야광 불빛으로 호젓하다.
단풍물빛이 배어나는 물소리를 뒤로하고 내삼포 쪽으로 올라간다. 대진교를 건너 오른쪽 제방길을 따라 걸었다. 한줄기는 홍천강의 원류이고 한줄기는 솔치 고개를 돌아 장평 당무 군업을 지나온 군업천이다. 고인돌을 세웠던 사람들의 기억을 더듬으며 영서 고속도로 동홍천 나들목 공사가 한창인 진등고개 아래 육십계단 아래 물속을 들여다본다. 오늘같이 햇살 좋은 날 꺽지가 바위에 붙어 주위를 살핀다.
백이동에서 참숯을 굽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성산을 지나 누치소로 오르는데 뺑대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제법 차다. 야시대에서 불어오는 골바람이다. 가리산 자락에서 시작하여 야시대를 가로 질러오는 물줄기는 소양댐으로 길이 끊긴 강마을 사람들의 애환을 아는 듯 뼛속 깊이 사무치도록 시리다.
물이 흐르는 곳엔 사람이 산다.
사람과 함께 울고 웃던 소리가 얼마나 깊으면 이처럼 맵냐!
시간은 오후로 접어들고, 갈 길은 멀다. 다시 돌아올 때 더 깊은 소리를 듣고 싶다. 마음속으로 약속하며 철정으로 향했다. 철정으로 들어서기 전에 주음치를 지나야 한다. 누치소에서 주음치 오르는 길은 수로를 따라 걷다가 벼랑길을 지나가야 한다. 한겨울이면 꽝꽝 언 얼음 위를 걷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지금은 우수 경칩이 지나고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 봄바람에 골짜기의 얼음산도 녹아 흐르는 물살에 강물도 불었다. 바위에 부서지는 물결에 어질머리가 났다. 처음 견지낚시를 했던 주음치 강변이다. 그 마을을 흐르는 개울 또한 주음치 고갯마루에서 흘러내린다.
한식경이 지나 홍천강휴게소에서 점심으로 가락국수를 시켜 휴게소 뒤편 전망대에서 먹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강의 모습은 진경이다. 두촌 장사랑골 내후동골 원동골 경수골 가리산골에서 흘러드는 장남천과 홍천강이 합수를 이루는 아우라지의 물줄기가 한눈에 다 들어 온다. 내촌에서 흘러드는 물줄기는 모래가 많이 쌓여있고, 두촌에서 흘러드는 장남천은 산세 탓으로 물줄기가 거칠다.
뜨끈한 국물로 속을 달래고 물안골로 들어선다. 삼형제 봉으로 더 알려진 물안골 유원지. 언제 놓았는지 높은 다리와 연결된 기도원과 펜션이 차지하고 있다. 한때 넓고 깨끗한 모래사장으로 찾는 사람이 많았던 이곳은 지금 뒤뚱거리는 거위가 목청을 돋우어 꽉꽉 울어댄다.
쫓겨나듯 내촌면 화상대리로 들어섰다. 고개를 넘자 왼쪽편 골 안에 빨간 버스가 눈에 띤다. 김기덕 감독의 빨간 버스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필름이 떠올랐다.
사람이 사람을 맞아들인다면 자연은 자연을 맞아들이는 게 아닐까? 답풍리를 흐르는 개여울은 여내골이다. 홍천에 여내골이라는 이름의 개울은 여러곳인데 답풍리의 여내골이 제일 크다.
강 따라 산발치를 따라 도관리 문현리를 지나 서곡리에 이르렀다. 꽤 먼 길을 거슬러 올라온 것이다.
서곡리에는 덕탄이 있다. 소나무 숲과 기기형형의 바위, 그리고 바위마다 물살이 빚어놓은 문양의 형상, 그 위를 흘러가는 물소리마다 전설이 묻어나는 곳이다. 한때는 출입이 자유로웠지만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아쉽다. 어쩌랴! 와야리로 거슬러 올라갔다.
와야 삼거리 이정표는 인제 상남과 물걸리 서석을 가리키고 있다. 인제 상남 쪽으로 들어섰다. 십분 쯤 걸어 오르자 가령폭포라는 팻말이 나왔다. 이 화살표를 따라 오리쯤 오르면서 땅의 울림이 발끝에 느껴졌다.
가령폭포다. 대암산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50m 바위 아래로 뛰어내렸다가 물안개를 피워 올리며 다시 오른다. 폭포는 날아오른다. 쉼 없이 두려움 앞에 자신의 삶을 끌어안고 몸을 던질 줄 안다. 가령폭포 벼랑을 돌아 올라서면 평원을 이룬다.
물은 생명이다. 생명이란 살려내는 힘이자 뿌리이다. 살려낼 수 있는 것은 다 살려내야만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물은 그 물음의 답이다.
가령폭포의 땅울림에 힘을 얻어 물걸리로 들어선다. 동창 만세 운동의 물결은 팔열사의 떳떳한 의거와 함께 독립의지를 불태웠고, 한국의 혼을 오늘까지 온전히 이어오게 했다. 물걸리를 가로지르는 물은 복골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이다. 이 개울막에 국악의 선율을 풀어내는 국악연구소가 있다. 소리란 자연과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 자연은 모든 걸 받아들이고 모든 걸 다 돌려준다. 풍운을 거느릴 줄 알고 천지를 움직일 수 있는 것 또한 자연이다.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게다. 강을 따라 걷는 수고로움 또한 마찬가지다.
서석면 수하리에서 쉬기로 했다. 졸라맸던 등산화를 벗고 양말을 벗으니 군내가 난다. 물속에 발을 담근다. 노독은 이렇게 풀어야한다. 홍천강이 거느린 샛강처럼 힘줄이 불끈 거린다. 아직 물이 차다. 수하에서 마의 태자도 강을 건넜으리라. 울음을 물아래 흘려보내고 오르막이 깊은 행치령을 넘었으리라. 행치령에서 만난 고려인의 혼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물줄기 또한 문바위를 지나 절골 항곡을 돌아 흘러 수하로 흘러들다.
참으로 고적한 마을이다. 물소리 또한 잔잔하다. 이 물속엔 뭐가 살까. 묵납자루의 혼인색 지느러미가 보고 싶다. 강가의 미루나무가 물소리와 잘 어울리는 마을.
다리를 건너 마을 안길로 들어섰다. 돌아가면 꼭 눌언동계곡이 나올 것이다. 나는 물소리를 들으러 이곳에 자주 왔다. 호박돌과 자갈 그리고 모래알이 구르는 소리가 속삭이듯 조곤조곤 들리는 곳이다. 말소리마저 눌언해진다. 그냥 듣는 것으로도 마음이 열린다.
물소리처럼 흥얼대며 걷는 길 한여름에 약수를 받아 올챙이 국수를 말아주던 약수터를 지난다. 담백하고 맹맹한 맛이 혀 끝에 감긴다. 어론을 지나온 황경골 물줄기가 몸을 섞는다. 느릅나무와 단풍나무 그늘이 터널을 이루는 황경골은 바람소리가 일품이다. 요란스럽지도 세차지도 않아 좋다. 황경골을 빠져나온 물줄기는 어론을 거쳐 본류인 홍천강으로 물이 드는데 건너편 산자락이 예사롭지 않다. 야트막하면서도 기품을 가진 봉우리가 마을을 내려다 본다. 고양산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무궁화나무가 자라는 곳이기도 하다.
거지도 쌀밥을 먹는다는 서석은 뜰이 너른 마을이다. 청량에서 흘러나온 물줄기와 삼신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 흥정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 그리고 홍천강의 발원지인 미약골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실어 나른 흙이 이루어 놓은 마을이다. 작은 마을이면서 깊은 골짜기의 샛강을 네 개씩이나 거느린 복 받은 땅이다.
발원지까지 거슬러 오르면서 많은 샛강을 만났다. 샛강이 살아나야 큰 강이 산다.
장마와 폭우로 받은 상처보다 우리 스스로 버리고 내팽개쳤던 쓰레기와 무분별한 개발행위로 더 상처 받은 것을 보면서 올라왔다. 그래도 마을을 지켜낸 것은 샛강이고 실개천이고 개울인 것만은 숨길 수 없다. 이제부터 강과 마을, 강과 사람의 숨결을 찾아 나선다.
그 첫걸음은 홍천강의 발원지인 미약골이다.
과연 홍천강의 발원지 미약골 용천수를 만날 수 있을까?
글·사진 허 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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