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야기 삶이야기[3]

▲선아름
'법률사무소 해원' 대표(서석)
홍천군청 법률상담 위원

꽃잎 흩날리는 봄날이건만 이맘때가 되면 처연한 한 사건이 떠오른다. 제주4·3 사건.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름조차 제대로 지어지지 못한 이 제주4·3 사건에 대해 최근 역사적인 판결이 선고되어 이를 소개한다. 3월16일 제주지방법원은 제주4·3 당시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억울하게 수감됐던 수형인 335명의 유족이 70여 년 만에 청구한 재심에 대해 335명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사는 이례적으로 피고인 모두에게 무죄를 구형하였고 이에 대해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우리나라 판결문에서는 좀처럼 사람 냄새를 맡기가 어렵다. 모든 판결문에는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판사 개개인의 특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정해진 서식에 따라 판결과 그 판결에 이른 이유만 기재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재판부가 작성한 판결문은 눈시울이 붉어지리만큼 감성적이다. 그 역사적 판결 중 일부를 소개한다.

“국가가 완전한 정체성을 갖지 못했을 때 피고인들은 목숨을 빼앗겼고 자녀들은 연좌제에 갇혀 살아왔다. 과연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삶을 살아냈는지, ‘국가는 무엇을 위해 그리고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몇 번씩 곱씹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오늘의 선고로 피고인과 유족에게 덧씌워진 굴레가 벗겨지고, 고인이 된 피고인들은 저승에서라도 이제 오른쪽, 왼쪽 따지지 않고 낭푼에 담은 지슬밥(감자밥)에 마농지(마늘장아찌)뿐인 밥상이라도 그리운 사람과 마음 편하게 둘러앉아 정을 나누는 날이 되기를 그리고 살아남은 우리는 이러한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2021. 3. 16. 선고된 제주4·3 사건 재심 판결문 중) 재판부는 “그동안의 세월을 참고 버티신 유족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오늘부터라도 편하게 주무시라”고 덧붙여 유족을 위로했다. 

필자는 초중고 12년간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제주4·3 사건에 대해서는 배워보지 못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대학 졸업 이후에야 제주4·3사건을 주제로 한 <지슬>이란 영화로 그 사건을 알게 되었다. 관광지로만 알고 있던 아름다운 섬 제주가 핏빛으로 물들었던 역사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이후 관련된 책을 읽고 제주4·3평화공원에 방문하여 전시된 사진과 유족들의 증언을 듣고는 믿기 어려운 역사의 잔인함에 가슴 아파했다. 

몇 해 전 평화를 염원하며 제주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필자는 순이삼촌(제주 4·3사건을 다룬 현기영 중편소설)의 배경이 된 <북촌리 4·3순례길>에 갔다. 북촌리는 제주 북쪽 있는 해안마을인데 이 곳은 제주4·3 사건 당시 하루에 300명이 총살을 당하여 집집마다 같은 날 제사를 지낸다. 이곳에는 너븐숭이기념관과 옴팡밭이 있다. 옴팡밭은 300명의 주민들이 아무 이유 없이 총살을 당한 곳이다. 이곳에서 죽임 당한 어른들의 시신은 매장을 했지만 아이들의 시신은 거두지 못해 그 자리에 돌무덤을 만들었다. 그래서 너븐숭이에는 ‘애기무덤’이 있다. 필자가 애기무덤에 방문했을 때 누군가 올려둔 초콜렛과 장난감이 있었고 무덤 위엔 노란 수선화가 피어있었다. 이곳에 묻힌 아이들이 이젠 피비린내 아닌 꽃향기를 맡고 있겠구나 생각하며 조용히 그들의 넋을 기리었다. 이념 갈등이 무어라고 어린 생명까지 죽였어야 했을까.

제주4·3 당시 제주 사람 3만 명 안팎이 희생을 당했다고 한다. 1948년과 1949년에 두 차례 군사재판이 열렸는데, 민간인 2530명에게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징역 1년에서 최대 사형이 선고됐다. 당시 수사와 재판은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하더라도 형무소로 보내진 많은 민간인들은 행방불명이 되었다. 아직도 그 시신을 찾지 못해 제주4·3 사건 평화공원에는 시신 없는 무덤(행방불명희생자위령단)이 있다. 이 행방불명자 표석이 3800기에 달한다고 하니 고통 속에 죽어간 고인을 장사도 해주지 못하고 보냈던 유족의 한이 어떠했을까. 위 재심 사건을 맡은 검사는 "판결문 이외의 별다른 소송기록이 없어 피고인의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면서 무죄를 구형했다. 구속영장 없이 구속이 이루어졌고, 수사 과정에서 폭행과 고문 등 가혹행위가 이뤄진 불법적인 재판이었던 것이다. 

지난 70년 동안 청산되지 못했던 제주의 역사가 이렇듯 법원의 판결에 의해 일단락 지어졌다.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으니 제주4·3사건의 진상이 규명되고 이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평화의 물결이 계속되어 분단의 대립과 갈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이들이 해원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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