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심사위원

지난 호에 이어 쓰고 싶은 장면이 너무 많아서 한 번 더 쓰기로 했다. 1970년도 월남(베트남)에 파병을 할 때 맹호부대 대원들이 해군수송선에 승선하고 그 가족과 동료들이 무사히 귀국하라며 목에 걸어주던 꽃목걸이와 젊은 아내가 귀여운 아기를 안고 떠나는 남편에게 손을 흔들어주던 장면은 5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눈에 선하다. 또한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로 떠나는 젊은이들을 환송하던 장면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갈 것이다. 

우리나라 TV 방송을 일반인이 시청한 것은 1960년대 말이다. 물론 흑백이다. 그때 유명했던 연속극이 “아씨”다. 그 후로 “세종대왕” 등 비록 흑백이지만 안방에서 영화(드라마)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문화혁명이었다. 얼마 후 1970년대 초 칼라(천연색)TV가 등장했다. 세상을 흑백으로 보다가 자연 그대로의 칼라로 보니 세상이 또 한 번 바뀌는 듯했다. 

흑백TV시대 때 잊지 못하는 한 장면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홍수환이 프로권투 세계챔피언을 획득했을 때다. 온 국민의 마음을 후련하게 했다. 프로권투는 국내에서 김기수(미들급) 선수가 이탈리아의 벤베루티를 상대로 챔피언에 도전 승리해 챔피언이 된 것이 최초다. 국외에 나가서는 홍수환 선수가 처음이다. 김기수의 세계챔피언 도전 때 개런티(달러)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마련해줬다는 얘기도 있다. 경제부흥을 위해 밤낮으로 분투하는 국민들 사기충천을 위해 배려한 일이라 하겠다.  

그 무렵 일본에서는 재일교포 역도산 프로레슬링 선수가 나와서 시원한 가라테(당수唐手, 국내서는 태권도라 함)로 일본선수는 물론 세계적 거구들을 이길 때 한국국민들이 자부심을 한껏 느끼면서 환호했다. 역도산이 일본 조직폭력배(야쿠자)에 의해 피살되자 그의 수제자인 김일 선수가 혜성같이 나타나 일본뿐 아니라 세계를 제패했다. 그는 박치기 기술로 역시 거인들을 쓰러뜨렸다. 특히 일본의 자이언트 바바라고 하는 거인 선수와 맞붙어 팽팽한 경기를 하다가 박치기 한방으로 그를 제압할 때 TV앞에 모여서 경기를 관람하던 시청자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또한 1980년대 초 KBS TV방송에서 주최한 이산가족 찾기 캠페인 방송은 보름동안이나 생방송으로 진행됐는데 온 국민이 밤새워 본 감격스러운 장면들이 연출이 아닌 실제로 이뤄졌다. 이 프로그램은 세계기록문화인 기네스북에도 오른 프로그램이다. 

그런가 하면 2014년 4월 15일 오후 인천국제항구터미널에서 나는 지인들과 같이 배편으로 중국여행을 떠나기 위해 승선을 기다리고 있었다(이 얘기는 몇 년 전 기고에서 언급한바 있음). 우리가 탄 배(선착장)에서 100m쯤 떨어진 또 다른 선착장에서 학생들이 손을 흔들며 우리에게 환호를 보냈다. 그들이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고 그날 밤에 세월호 사고가 난 것이다. 나는 이 소식을 그 이튿날(16일 오전) 중국에서 알았다. 손 흔들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들의 영혼을 위해 다시 한 번 묵념을 한다.

TV는 송출방법에 따라 지상파와 공중파가 있다. 기존의 3개 TV방송으로 KBS와 MBC SBS가 있고 케이블방송으로 다수의 채널이 있다. 이들 프로그램 내용은 대체적으로 다음 5개 부서로 크게 나눠져 있다. 먼저 뉴스가 있고 정치·경제·사회 분야가 있고 연예 스포츠 등이다. 이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60여 년 동안 특별히 잊히지 않는 화면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필자의 경우는 위에 기술한 바와 같다. 

추가로 넣는다면 88올림픽 개·폐회식 장면과 월드컵 세계 4강 진출 촛불집회 등이 있고 최근 들어서는 코로나19 관련 소식들이다. 허긴 중국 민항기 국내착륙과 이륙장면 금강산과 개성 관광도 TV 속 잊지 못할 감격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앞으로 영상문화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발전할 것이다. 기계문명 속에 사는 현대인은 아마도 TV 앞을 못 벗어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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