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심사위원

홍천시내 인근에 땅굴이 5개 있었다는 것은 아마 60대 전후의 일부 세대만 알고 거의 모를 것 같아 적어보기로 했다. 희망리 두개비산 등산로 계단 밑에 옆으로 길이 약 100m 정도의 땅굴이 1990년대까지 있었다. 이 땅굴은 인근 저수지가 메워진 후에도 계속 있다가 언제부터인가 입구가 메워지고 주택이 들어섰다. 한때는 그 주택에 분식점이 있다가 요즘은 철거되고 도로변이 됐다. 

이 동굴이 어떤 용도로 생겼는지는 몰라도 규모가 제법 컸다. 필자가 중·고등학교 때 몇 번 초입새까지만 들어가 보고 무서워서 더 이상은 들어가 보지 못했다. 추측컨대 이 굴은 천연동굴은 아니고 일제강점기 때나 또는 그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금광이 아니었나 싶다.

또 하나는 역시 희망리 마지기 절골 근처의 동굴로 역시 길이가 3~40여m쯤 된다. 좌우의 높이가 2m쯤 되고 직선굴이다. 이 굴도 역시 용도는 확실치 않고 금광굴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만 할 뿐이다. 이 굴에는 6.25 한국동란과 애잔한 사연이 있는 동굴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남침한 공산주의자들이 남측의 우파인사들을 불순분자라고 하여 집단처형한 곳이다. 숫자는 몰라도 수십 명의 사람들을 이 동굴에서 총살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때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 몇 분의 증언에 의해서 이러한 사실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동굴 앞에는 1990년 말경 사설 테니스장이 생겨서 지금까지 잘 운영되고 있으며 입구를 막지는 않고 폐쇄돼 있어 들어가기가 어렵게 돼있다. 또 하나의 동굴은 갈마곡1리 샘통골 입구(노인정에서 북쪽 100m) 도랑가에 수직으로 된 굴이 있는데 그 깊이가 하도 깊어 추측할 수도 없었다(현지인 박재웅 증언). 입구의 넓이는 약 2~3m 정도 되었다. 이 수직굴은 옛날에 금을 캤다는 이야기가 있다. 1980년대쯤 인근 토지주인이 자갈과 폐석 등으로 메우고 지금은 농지로 사용 중이다. 

다음은 검율리에 2개가 있었다(현지인 박기연 증언). 하나는 이괄바위 밑(검율리 산 15번지) 홍천시내 쪽으로 200여m 지점에 옆으로 파였고 들어갈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 금광굴이었다고 한다. 현재도 입구 쪽만 메워졌고 안쪽은 그대로 있다. 굴 안에는 물이 차서 돌멩이를 던지면 길게 소리가 난다고 한다. 또 하나는 현재 군인부대가 주둔하고 있는(뒤에는 대미산성) 곳의 뒤쪽으로 깊은 굴이 있었는데 역시 금광굴이라고 한다. 이 굴은 1960년대 초 입구가 메워지고 역시 굴속엔 물이 차있다고 한다. 

우리 홍천읍 지역에 흩어져있는 동굴이 이외에 더 있는지는 몰라도 지금 시점에서는 필자가 파악한 것이 전부다. 홍천에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때 금이 많이 나와서 남면 화전리 두촌면 자은리 내촌면 와야리와 화상대리(연못골) 등에는 노다지광산이 많았다고 한다. 금광이 많은 데는 홍천시내보다 전기가 먼저 들어와서 활발한 경제활동이 이뤄졌다고 한다. 

잿골 입구(두개비산 밑 등산로 입구) 땅굴을 메우지 않고 활용을 하면 어떨까. 땅굴 속은 온도가 0℃ 내외를 유지하며 더워야 10℃ 내외로 여름엔 선선하고 겨울은 따뜻하다고 하니 주택가 인근 카페나 음식점 같은 곳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본다. 

언젠가 모 신문기사에 의하면 폐광지역이나 또는 남녘지방에서 땅굴을 이용해 관광자원도 되고 쉼터로 만들어 성공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지역도 검율리 이괄바위 인근 굴이나 마지기 테니스장에 접한 땅굴을 이용해 관광자원화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별 것 아닌 것도 활용방법에 따라 관광자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작권자 © 홍천뉴스 / 홍천신문 홍천지역대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