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70]

이별의 원망이나 한은 오래될수록 깊어만 간다. 오래되면 쉽게 잊을 수 있다고 하지만 오래될수록 잊혀지지 않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의 한이다. 그래서 이별과 송별 그리고 별리와 같은 시제로나마 그 한을 달래기 위해 시문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현상을 대리만족이라고 한다. 글로서 한을 달래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밤 인간이별의 정 깊어지고, 넓은 바다에 지는 달빛 파도 속에 부서진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送別(송별) / 유한당 홍원주
이 밤에 인간이별 정들은 깊어지고
바다에 지는 달 파도에 부서지는데
오늘밤 기러기 소리 부질없이 듣는구나.
人間此夜離情多   落月蒼茫入遠波
인간차야이정다    낙월창망입원파
借問今宵何處宿   旅窓空聽雲鴻過
차문금소하처숙    여창공청운홍과

객창에서 구름 속 기러기 소리 부질없이 들리네(送別)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유한당(幽閑堂) 홍원주(洪原周:1791∼?)로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이 밤 인간이별의 정 깊어지고 / 넓은 바다에 지는 달빛 파도 속에 부서진다 // 묻노니, 그대는 오늘밤 어디에서 묵고 있을까 / 객창에서 구름 속 기러기 소리 부질없이 들리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임과 이별하며]로 번역된다. 당대를 풍미했던 여류시인 영수합서씨(令壽閤徐氏)의 맏딸이다. 어머니의 시심을 닮았던지 시상이 풍부하여 입에 오르내린 여류시인이다. 여인이기에 남녀의 애틋한 정을 간직한 시심을 보인다. 이별은 아픔이었으며 한을 담아냈고 눈물도 담았다. 송별은 아마도 우리민족 정서에 가장 적합했을 지도 모른다.

시인은 이별의 정한 덩어리들이 파도에 부서진다는 시주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이 한밤에 이별의 정은 깊어지고, 그것은 넓은 바다에 지는 달빛 먼 파도 속에 부서진다고 했다. 이별의 정은 같이 있을 때보다 더욱 깊어 바다라는 시적상관물로 치환시키는 멋을 부린다. 파도와 같이 부서졌다 다시 모아오는 그리움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화자는 이제 임에게 후정의 가득 담아내기 위해 살며시 물어 본다. 오늘밤 어디에서 묵는지. 그 대답은 메아리 되어 객창에 기러기 소리되어 들려온다는 시상을 매만졌다. [묻노니, 그대 오늘밤 어디에서 묵을까 / 객창에서 구름 속 기러기 소리 부질없이 듣는다]고 했다. 후정이 너무 깊어 송별의 정만으로 다 일으키기엔 부족했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인간이별 정이 깊고 달빛 파도 부서지네, 오늘 밤 어디서 묶나 부질없는 저 기러기’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유한당(幽閑堂) 홍원주(洪原周:1791 ∼ ?)로 조선 후기 현종 때의 여류시인이다. 관찰사를 지낸 아버지 홍인모와 여류시인인 어머니 영수합서씨 사이에서 3남 2녀 가운데 맏딸로 태어났다. 홍석주와 홍길주의 누이동생이며, 심의석(沈宜奭)의 부인이다. 숙선옹주와 혼인한 영명위 홍현주 누나다.

【한자와 어구】
人間: 인간. 此夜: 오늘 밤. 離情多: 이별의 정이 많다. 落月: 달이 지다. 떨어지다. 蒼茫: 창망하다. 入遠波: 사람이 파도에 멀다. // 借問: 묻다. 부정칭의 사람에게 묻다. 今宵: 오늘 밤. 何處宿: 어느 곳에서 자다. 旅窓: 객창. 空聽: 부질없이 듣다. 雲鴻過: 구름에 기러기가 지나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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