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청탁금지법 이야기-199-

▲김덕만 박사(정치학)
전 국민권익위원회 대변인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

2016년 9월 28일 부정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만 4년이 지나면서 판례도 꽤 늘어나고 있습니다. 청탁금지법은 어떠한 금품을 주고받지 않고 단지 청탁성 말만 해도 과태료를 부과하게 되고 심지어 형사처벌까지도 받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공직사회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부정청탁으로 인해 과태료 1천만 원이 부과된 사례를 소개합니다. 

판결문과 법조문이 매우 어려워서 쉽게 상황을 일반문장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안산소방서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소방시설 지도·감독 과정에서 드러난 위법 사항을 없던 일로 하라는 부당한 지시를 내린 안산소방서장에게 법원이 과태료 1천만 원을 부과했다는 것입니다.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민사21단독 천무환 판사는 전 안산소방서장 A씨에 대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사건에서 이같이 판시했습니다.

판결문을 들여다보면 안산소방서는 2016년 6월부터 6개월간 준공필증 신청을 한 지역 내 소방공사현장 등에 대한 소방시설공사업법 지도·점검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안산소방서는 B업체가 ‘소방시설을 시공할 때에는 감리를 위해 감리업자를 공사감리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소방시설공사업법을 위반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안산소방서장으로 근무하던 A씨는 B업체 측 관계자를 서장실에서 만난 뒤 부하 소방관을 불러 B업체의 위법사항을 없던 일로 하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합니다. 부당한 지시(청탁)를 받은 소방관들은 부정청탁금지법에 따라 거절의사를 명확히 표시했습니다. 부당한 청탁이 들어오면 공직자는 거절의사를 명확히 하도록 규정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장 A는 재차 이 위법사항을 없던 일로 하라고 지시하자 담당소방관은 지도감독기관인 경기도 감사관실에 자신의 상사인 소방서장이 부정청탁 금지법을 위반했다고 신고했습니다. 동일한 사건으로 두 번째 부정청탁을 받은 공직자는 신고해야 면책사유가 됩니다. 

감독기관인 경기도는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고 서장 A에 대한 청탁금지법 위반에 따른 과태료 부과를 법원에 의뢰했습니다. 청탁금지법 제23조(과태료)는 제3자의 부정청탁을 받아 이를 중개한 공직자는 최대 3천만 원의 과태료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서장 A는 “위법사항 묵인을 지시한 게 아니라 법의 테두리 내에서 B업체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했고 준공필증 신청을 취하하도록 한 지시는 안산소방서의 공신력을 유지하고 위법한 현장 지도·감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민원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안산지원은 결정문에서 "부하 직원은 서장 A가 봐줄 수 있지?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지?"라는 말을 했다고 분명히 진술하고 있고, 준공필증 신청 취하 지시로 가장 부담이 없어지는 주체는 위법사항으로 인한 형사처벌을 면하게 되는 B업체라는 점에서 서장 A는 B업체 위법사항을 묵인하고자 취하 지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어 “서장 A의 행위는 형사상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도 있고 이로 인해 일선에서 성실히 근무하는 소방관들의 사기저하가 우려되는 점, 다만 서장 A가 부정한 이익을 취한 것으로 볼만한 자료는 없는 점 등을 고려해 과태료를 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사건은 전국적으로 현재까지 청탁금지법 과태료 결정이 난 사건들 가운데 가장 무거운 처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시사점을 두 가지 정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상사가 아랫사람에게 내린 부당한 지시도 청탁금지법에 해당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건에서 뇌물이나 미래에 어떤 약속이나 의사표시를 주고받은 점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말로 청탁만 했을 뿐인데도 처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부정청탁을 처리해 주었다면 담당소방관은 최대 징역 2년 또는 2천만 원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두 번째로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대해 용기 있게 ‘아니오’ 라고 호루라기를 불 수 있는 공직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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