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59]

‘송석원’은 추사 김정희가 쓴 [松石園]이란 편액을 걸고 불우한 시인들과 시와 술로 소요자적 했던 흔적을 찾는다. 후일 고종 아버지 흥선대원군도 여기에 나와 큰 뜻을 길렀다고 한다. 문학이 중인을 문화공동체로 결집시킨 과외 활동이었다면, 그림과 음악은 그들의 대표적인 직업의 하나였다. 추사는 이렇게 근접한 생활을 했다. 북쪽 계곡 맑은 그늘 경개 마냥 좋고 시원한데 / 지는 꽃 어지러이 창태 위에 수를 놓는구나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登松石園(등송석원)[1] / 사영 김병기
시내 물 그늘진 곳 경치 좋아 시원하고
인간의 좋은 봄빛 어디로 돌아갔나
자리에 모인 분 모두 즐겁게 마셔보세.
北澗淸陰晩始開    飛花浪籍點蒼苔
북간청음만시개    비화랑적점창태
人間春色終何處    海內英雄卽此杯
인간춘색종하처    해내영웅즉차배

인간의 좋은 봄빛이 다 어디로 돌아갔는가(登松石園1)로 제목을 붙여본 율(律)의 전구인 칠언율시다. 작가는 사영(思穎) 김병기(金炳冀:1818~1875)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북쪽 계곡 맑은 그늘 경개 마냥 좋고 시원한데 / 지는 꽃 어지러이 창태 위에 수를 놓는구나 // 인간의 좋은 봄빛이 다 어디로 돌아갔는가 / 이 자리에 모인 분들 즐겁게 마셔 보세]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송석원에 오르면서1]로 번역된다. [송석원松石園]은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 ‘송석원시사야연도松石園詩社夜宴圖’에 나타나듯 연원은 조선 정조 때 위항시인委巷詩人들 모임이름이다. 서인 ·중인 출신들이 모여 살던 서울 서촌(西村: 지금의 인왕산 밑 옥인동 일대)의 소나무 숲 사이로 계류가 흐르는 곳에 천수경이 정원을 짓고 살았단다.

시인은 계곡물이 시원하고 지는 꽃이 창태를 수놓은 계절에 우리는 송석원에 모였다는 시주머니를 흔들어 깨운다. 북쪽 계곡 맑은 그늘 경개는 마냥 좋고 시원한데, 지는 꽃은 어지럽게 창태 위에 수를 놓는다고 했다. 여름을 재촉하는 늦봄을 묘사해 내고 있다.

화자는 완연했던 봄빛을 원망하면서 즐거움을 같이 만끽하는 권유의 잔을 들자는 후정을 이끌어 냈다. 인간에게 좋은 봄빛이 이젠 다 어디로 돌아갔는가를 묻고 이 자리에 모인 분들 즐겁게 마셔보자는 자기 흥취에 만족한다. 이어지는 후구에는 [골목 아지랑이 희미하게 쌓였구나! / 언제나 해질 무렵 마음 자주 상하느니 // 푸른 버들 드린 새 꾀꼬리가 노래하니 / 동호의 옛 낚시터가 한없이 그립다]고 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북쪽 계곡 마냥 좋고 창태 위에 수를 놓네. 좋은 봄빛 어디 갔나 모인 분만 마셔보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사영(思穎) 김병기(金炳冀:1818~1875)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생부는 김영근이고, 김좌근의 양자가 되었다고 알려진다. 흔히 사영대감으로 불렸으며,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공조, 예조, 이조, 호조, 병조판서 등을 두루 역임하였고 좌찬성에 올랐던 인물이다. 저서에 ≪사영집≫이 있다.

【한자와 어구】
北澗: 북쪽 계곡, 淸陰: 맑은 그늘. 晩始開: 만시를 열다. 마냥 좋다. 飛花: 지는 꽃. 浪籍點: 낭적점이다. 어지럽게 수놓다. 蒼苔: 푸릇푸릇한 이끼. // 人間: 인간. 春色: 봄 색. 終: 마침내. 다. 何處: 어느 곳. 海內: 이 자리. 英雄: 영웅. 모든 사람. 卽此杯: 바로 잔을 들다. 술을 마시자.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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