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심사위원

최근 확인된 홍천향토문화연구소 연구에 의하면 그동안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학명루 터가 확인돼서 관심 있는 군민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문학박사이고 역사 전공 3급 학예사인 강대덕 박사의 연구논문에 의하면 범파정은 홍천읍 진리 현 세방볼링장 서남쪽 인근으로 최근 조성한 소공원 인근이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매우 뜻있는 공원 조성이라 하겠다. 관계기관에서는 이곳에 범파정을 근사하게 복원해서 옛 풍취와 관광자원화를 했으면 한다. 

이곳에서 역시 서남쪽으로 2~300여m 골목에는 1990년대 아동문학가로 전국에 이름을 날린 민현숙 생가가 지금도 있다. 골목과 연계하면 좋겠다. 이곳은 지대가 약간 높고 큰 도로와 접해있으며 화양강(홍천강)까지 100여m 밖에 안 된다. 도로 건너에는 60년대만 해도 도로와 강둑 사이에 민가들이 있었고 아카시아와 밤나무 버드나무들이 무성했다(1955년 필자가 3년간 인근서 거주). 도로 옆과 세방주유소 사이 언덕 밑에 샘물이 나와서 인근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다. 

그동안 홍천 범파정의 위치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있었다. 제일 유력한 설은 홍천초등학교 앞 옛 학다리 근처가 아닌가 했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앞 연못이 워낙 크고 물도 많았을 뿐더러 경치가 좋아 학들이 많이 날아왔다고 한다. 인근 마지기서 내려오는 맑은 물도 흐르고 그 다리 명이 학다리이고 해서 학명루나 범파정이 이 근처에 있지 않았나 했다. 

또 한 위치는 갈마곡리 끝자락 태학리 경계지점인 대기고개 우측(홍천시내에서 볼 때)인데 현재 통일염원기념비가 들어선 인근이 아닌가 했다. 이곳에 규모가 아담한 성황당이 70년대까지 있었고 역시 밤나무와 참나무 아카시아 등등 숲이 우거져 있어 경치가 매우 좋았다. 이곳에서는 동서남북의 산과 강이 모두 보인다. 동남쪽에는 덕치천과 이괄봉 오룡산성 멀리 공작산 등이 보인다. 동쪽에는 대기벌(현 헬기비행장)과 결운리 와동리 검율리 등이 환히 보이고 남서쪽으로 남산 거북등과 연봉리 멀리 송학정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또 한 설은 이곳에서 200여m쯤 아래 경주이씨 사미정공파 정자각 인근이다. 이곳 역시 경치가 좋은 곳으로 동남쪽으로는 절벽이 있고 그 밑에는 깊은 소가 있다. 지금까지 이 세 곳에 범파정이 있지 않았나들 했으나 확실한 곳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지금에야 알 수 있게 됐다. 강대덕 박사의 연구논문에 의하면 지번까지도 있다고 하니 우리지역 향토문화연구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범파정을 중심으로 화양강(홍천강)이 유유히 흐르는데 헬기비행장 앞 정수장에서 연봉 송학정 앞까지는 약 2~3km가 된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때는 홍천이 강을 따라 길게 발전됐다. 현재 홍천주유소 앞 사거리가 5일장의 중심이고 미전거리였다. 당시는 남산교가 없어서 삼거리였다. 남산교는 2000년대 초에 건설됐다. 나룻배 터가 사미정에서 시내 쪽 100여m 화양교에서 50여m쯤에 있었고 장마 때마다 출발지점이 변경됐다. 

현 화양교가 첫 번째 교량을 헐고 두 번째 가설했고 그 밑에 돌다리가 200여m 기준으로 두 개 있다. 범파정에서 약3~400여m쯤(미륵당 앞) 여들목에 가을부터 봄까지 섶다리(나무발에 솔가지를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다리로 보통 5~6개월 사용)를 사용하다가 1954년경 제재소(목재를 켜는 공장)가 시내에 4~5개나 있어 이곳에서 죽데기를 기증 받아 쓰고 솔가지에 흙을 덮는 다리는 설치하지 않았다. 

지금의 세차장과 미륵당 밑 골목길이 장날이면 동면지역 주민 번화가가 되어 장사도 잘되고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필자가 이 동네에서 5년을 살았다. 오랫동안 미궁에 빠졌던 범파정 터를 확인하고 역사적 근거를 제시한 문학박사이자 역사학자 홍천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실장 강대덕 박사와 향토문화연구진들의 노고에 홍천군민의 한사람으로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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