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54]

매월당은 청평사에서 오래 둔거遁居했다. 이때 그는 ‘학매學梅’라는 제자를 두었는데 후대에 서산대사와 맥이 닿았던 인물이다. 유객有客 시는 두보에서 나온 듯하다. 이 말에는 지조와 자기성찰이 담겨져 있다. 수련에서는 ‘유한幽閑’과 ‘초매超邁’라는 품격이 잘 나타나 있는 점을 감안하면 허균은 한껏 한적하다(閑適自任) 평했다. 좋은 나물 돋아날 때를 미리 알고, 향기로운 버섯이 비를 맞아서 부드럽기 그지없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有客(유객) / 매월당 김시습
아름다운 나물이 돋아 날 때를 알며
향기로운 버섯은 비 맞아 부드러운데
거닐며 읊조리어서 백년 근심 없애리. 
佳菜知時秀    春菌過雨柔
가채지시수      춘균과우유
行吟入仙洞    消我百年憂
행음입선동      소아백년우

내 비로소 백 년의 근심을 없애려고 했었네(有客)로 제목을 붙여 본 율(律)의 후구인 오언율시다. 작자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좋은 나물 돋아날 때를 미리 알고 / 향기로운 버섯이 비를 맞아서 부드럽기 그지없네 // 거닐면서 읊조리면서 선동에 들어가 보니 / 내 비로소 백 년의 근심을 없애려고 했었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때마침 손님이 있어서]로 번역된다. 시인 자신을 은유적으로 숨기면서 손님이나 재상으로 생각하며 시상을 일으킨 경우가 있다. 대시인답게 청평사의 어떤 나그네를 가상적인 손님으로 설정한다. 시인은 전구에서 [청평사의 어떤 나그네가(有客淸平寺) / 봄 산에 이리저리 노닐고 있네(春山任意遊) // 새는 고적한 탑 고요 속에서 울고(鳥啼孤塔靜) / 꽃은 작은 시내 물결에 떨어지고 있네(花落小溪流)]라고 했다. 자연의 선경이 물씬 풍긴다.

시인은 나물과 버섯이 자연의 섭리에 따라 돋아나고 자라는 자연의 한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좋은 나물은 돋아날 때를 알고, 향기로운 버섯은 비를 맞아 부드럽다는 시통을 부릴 대로 부려 놓았다. 손님을 대접하기에 적당한 나물이었을 것이다.

화자는 나물이 풍부하여 손님 대접하기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 나머지 안위일랑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뜻을 내비친다. 거닐며 읊조려 신성이 산다는 선동仙洞에 들어가 보니, 모든 것이 풍족하여 백 년의 근심일랑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모처럼 청평사의 나그네로 치환한 자신의 풍족함에 만족한 모습을 보게 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돋아날 때 미리 알고 버섯 향기 그지없네, 읊조리며 들어가서 백년 근심 없애련지’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으로 조선 전기의 문인이자 학자이다. 세종은 어린 김시습에게 여러 가지 시를 지어보게 하였는데 시를 척척 지어내어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상금으로 비단 50필을 하사하고 훗날 학문을 이루면 큰 인재로 쓰겠다고 약속하였던 기대된 인물이었다.

【한자와 어구】
佳菜: 좋은 나물. 知: 미리 알다. 時秀: 좋은 때. 春菌: 봄 버섯. 향기로운 버섯. 過雨: 비를 맞다. 柔: 부드럽다. // 行吟: 거닐면서 시를 읊다. 入仙洞: 선동에 들다. 신선이 사는 고을에 든다는 뜻. 消我: 나는 조금은 알다. 비로소 알다. 百年憂: 백년의 근심. 오랫동안 쌓인 근심.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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