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50]

암만해도 봄은 좋은 계절이다. 새 생명들이 싹을, 생명이 약동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기 때문이다. 묵었던 때를 깨끗이 씻고 새로움이란 선물을 지구상에 주기 때문이다. 연약한 자들이 훌훌 털고 추위 때문에 움츠렸던 어깨를 펼 수 있기 때문이다. 봄 경치는 짓궂은 것을 모두 쓸어버리고 새로움을 간직하는 것이 새로운 봄이다. 임 그리는 마음에 밤에 잠들 수가 없고, 누구를 위해서 아침이면 거울을 보리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春景(춘경) / 삼의당 김씨
임 그린 마음으로 잠자지 못한 신세
누구를 위해선가 아침마다 거울 보니
동산엔 도리 피었네 좋은 경치 취하며.
思君夜不寐    爲誰對朝鏡
사군야불매      위수대조경
小園桃李發    又送一年景
소원도리발      우송일년경

동산에는 복숭아꽃과 오얏 꽃이 가득 피었는데(春景)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삼의당 김씨(三宜堂 金氏:1769~1823)로 여류시인이다. 위 시의 원문을 의역하면 [임 그리는 마음 가득 밤에 잠들 수가 없고 / 누구를 위해서 아침이면 거울을 보랴마는 // 동산에는 복숭아꽃과 오얏 꽃이 가득 피었는데 / 또 한 해 좋은 경치를 보면서 그냥 보내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봄경치의 아름다움]으로 번역된다. 시인은 거처하는 집의 벽에 글씨와 그림을 가득히 붙이고 뜰에는 꽃을 심어 ‘삼의당’이라 불렀다. 가세가 궁핍하였기 때문에 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머리카락을 자르기도 하고 비녀를 팔기까지 하였다 한다. 그녀가 평생을 두고 남편에게 권학하는 글을 많이 썼던 것을 안다면 시적인 배경이 선뜻 이해가 될 것이다.

시인은 이런 점을 아쉽게 생각하면서 봄의 시상을 이끌어냈다. 시적자아는 봄을 맞아 임을 그리워하며 이별의 아쉬움을 토로한다. 거울을 볼 필요 없는 규방의 고독한 여인으로 문 밖에서 들려오는 봄의 소리와 문 밖에 펼쳐진 봄의 정경에서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대변해 준다.

화자는 비단 옷 입고 창 밖에서 한가로이 꽃잎 줍는 여인의 모습으로 시심을 나타낸다. 버드나무가 봄바람에 가지가 휘어지니 술잔에 부딪쳐 이별 노래를 슬피 우는 것으로도 노래하고 있음을 볼 수 있어 시격을 한껏 높이는 모습도 살펴본다. 여인의 다소곳한 모습을 그리는 여인의 순백한 마음을 시지詩紙에 가득 메우는 데 시간을 할애했음이 훤히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임이 그리워 잠 못 들고 아침이면 거울 보랴, 복숭아꽃 오얏꽃 가득 좋은 경치 그냥보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2권 1부 外 참조] 삼의당 김씨(三宜堂 金氏:1769~1823)로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이다. 1786년 18세 되던 해에 같은 해 같은 날 출생이며 같은 마을에 살던 담락당 하립과 혼인하였다 한다. 이들 부부는 나이도 같거니와 생년월일이 같아서 기이한 인연으로 여겼으며 금슬이 좋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자와 어구】
思君: 임을 그리다. 夜: 깊은 밤. 不寐: 잠을 자지 못하다. 爲誰: 누구를 위하다. 對: 대하다. 보다. 朝鏡: 아침에 보는 거울. // 小園: 작은 동산. 桃李發: 복숭아꽃과 오얏 꽃이 피다. 又送: 또 (일 년을) 보내다. 一年景: 일 년의 경치.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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