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심사위원

국가재난지원금이 개인당 40만 원과 가구로는 100만 원이 나왔다. 또 지방자치단체에서 상품권으로 일인당 30만 원씩 나왔다. 어쨌든 공짜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아무 조건 없이 백여만 원에 가까운 돈(상품권)이 들어왔으니 몇 달 동안은 잘 쓸 것이다. 소비는 미덕이라는 말이 있다. 소비가 잘 돼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원천적인 얘기다. 또 파괴는 건설이라는 극단적인 말도 있다. 모두 내수가 잘 돼야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얘기를 내포하고 있다.

며칠 전 단오 때 필자가 나가는 사찰 스님의 법문 중 일상적 생활에서의 절약에 대한 얘기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스님이 어릴 적 그의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어린 스님이 세수를 할 때 물을 쓸데없이 많이 쓰니까 “얘야 물을 그렇게 많이 쓰면 이담에 죽어서 극락에 가면 네가 쓴 물만큼 세숫물을 많이 마셔야 한단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물을 아껴 쓰는 버릇이 생겨 지금도 물을 아껴 쓴다고 한다.

또 그의 아버지는 스님이 촛불을 밤새워 켜든가 낮에도 켜놓을 때가 있으면 “얘야 네가 초를 아끼지 않고 그렇게 켜두면 이담에 죽어서 밤이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된다. 그러니 촛불도 아껴야 된다”고 하셨단다. 그 후부터 촛불 또한 꼭 필요할 때만 켠다고 했다. 이런 말도 있다. 농부가 쌀알 하나를 생산하기 위해선 아흔 아홉 번의 손길이 간다. 즉 이 말은 쌀(벼농사)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십 번의 일을 해야 우리가 주식으로 먹고 있는 쌀을 만들어내니 쌀알 한 톨이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식량부족국가다. 쌀을 제외하고(쌀은 100%)는 자급률이 25%밖에 안 된다. 주식인 쌀만 자급자족이 되고 그 외 모든 것은 수입에 의존한다. 식량이 부족해 전쟁이라도 난다면 제일 큰 타격을 받을 처지에 놓여있다. 1990년대나 2000년대 때는 국민일인당 쌀 소비량이 90kg~100kg이었으나 지금은 60kg내외로 절반에 가까운 수치로 쌀 소비량이 줄었다. 그 대신 밀가루를 이용한 빵이나 기타 대용식품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내수는 살아나야 한다. 그래야 많은 공장들이 잘 돌아가 일자리가 생겨나고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도 살아난다. 우량의 국산품이 나와야 해외로 수출을 하고 반면 외국의 생필품도 수입한다. 국제간의 교류도 국내의 소비가 활성화돼야 경제가 원활히 돌아간다. 하지만 소비와 낭비는 다르다. 지금은 식사문화 중 외식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하다. 그 중에도 뷔페의 경우 먹을 만큼만 떠다 먹고 더 먹으려면 얼마든지 더 떠다 먹으면 되는데 한 번에 많이 가져다 남기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보게 된다. 멀쩡한 음식물을 버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낭비다.

또한 작은 식당(한식)이나 큰 식당에서 나오는 1인용 반찬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하긴 우리나라의 음식문화는 푸짐하고 넉넉한 것이 예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반찬 양도 많고 가지 수도 많다.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을 먹을 만큼만 먹을 수 있는 제도적 관행이 필요하다. 한 젓가락도 안 먹는 반찬이 수두룩하니 그 남은 것들은 모두 음식쓰레기로 버려진다. 이것도 낭비의 사례다. 

절약은 꼭 먹을 만큼만 음식을 마련하는 것이다. 겉치레로 모양새 좋게 놓는 반찬은 생략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수 기본이 되는 것이 의식주다. 즉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집이 있어야 한다. 제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된다 해도 이 세 가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형태나 형식과 질은 변할 수가 있다. 

의식주의 해결을 위해서 모든 생활문화가 발전되고 있다. 요즘 의복(옷)은 떨어져서 못 입는 것은 없다. 유행을 타서 버려지는 옷이 태반이다. 집 또한 살기가 불편해서라기보다 사회적인 여건(교육 문화)에 의해 바뀌게 된다. 하여튼 소비와 절약은 동전의 양 면과 같고 양날의 칼과도 같다. 소비가 미덕이 되고 절약이 생활화될 때 우리는 보다 풍요로운 삶과 행복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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