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44]

요즈음 ‘고열苦熱’하면 ‘몸에서 나는 높은 열로 심한 열병’ 같은 뜻으로 쓰이지만, 우리 선현들이 생각했던 고열은 ‘견디기 괴로울 정도로 매우 심한 더위’를 뜻했다. 견디기 어려운 무더위를 참아 내기란 쉽지 않았다. 부채로 연신 부쳐도 보지만, 뜨거운 열을 식히기엔 역부족이다. 에어컨이 있는 건물을 찾지만 그 때 뿐이다. 전에 없던 더위라고 해마다 말들을 하는데, 막상 여름이 닥쳐서 생각하면 그렇겠다고 여겨진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苦熱(고열)[1] / 성호 이익
전에 없던 더위라고 해마다 하는 말에
막상 닥쳐 생각하면 그러리라 여겨지고
사람은 생각 잊으나 하늘마음 한결같아.
年年人道熱無前    卽事斟量也似然
연년인도열무전      즉사짐량야사연
自是凡情忘過去    天心均一豈容偏
자시범정망과거      천심균일기용편

사람 생각 지난 일을 잘 잊기 때문이겠지만(苦熱1)으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이며 조선의 실학자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전에 없던 더위라고 해마다 말들을 하는데 / 막상 여름이 닥쳐서 생각하면 그렇겠다고 여겨지네 // 사람 생각 지난 일을 잘 잊기 때문이겠지만 / 하늘마음 한결 같아서 치우침만은 없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찜통더위 / 찌는 더위를 참으며]로 번역된다. 요즈음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아열대성 기후로 변하면서 이상기온 현상을 보여 더웠다 하면 가마솥이요, 추웠다 하면 냉장고를 연상한다는 말을 한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에도 그랬던 것이 아닐까. 찌는 더위를 [고열苦熱]이라고 했으니 감기 몸살이란 고열보다 더했던 모양이다.

 시인은 더위를 말로만 들었는데 막상 더위가 닥치고 보니 참기가 많이 힘들었다는 시상 주머니다. 전에는 없었던 더위라고 해마다 말을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막상 그 더위가 닥치고 보니 생각하면 그렇겠다고 여기겠단 심산이다. 체험의 한 도막을 놓아 시적감흥이 크다.

 화자는 매년 지나는 일을 잊어버리기 쉽지만 천기는 한결같은 후정을 두었다. 사람들 생각이 지난 일을 잘 잊기 때문이지만, 하늘마음은 한결같아서 이 어려운 고열 고통의 치우침 없다는 시상이다. 이어진 후구에서는 [온 몸에 하루 종일 땀이 줄줄 흐르더니 / 힘겨운 부채질은 잠시도 쉬지 못한다네 // 밭에 일하는 사람들은 괴로움을 생각하고 / 초가집은 비록 좁지만 근심만은 우선 접어두네]라고 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전에 없던 독한 더위 닥쳐 보니 그렇더군, 사람 생각 지난 일들 하늘마음 치우침만은’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으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다. 실용적인 학문과 양반도 생업에 종사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여론과 평판에 의해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이른바 공거제를 주장했다. 처음에는 성리학에서 출발하였으나 실용적인 학문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한자와 어구】
年年: 해마다. 人道: 사람들이 말하다. 熱無前: 전에 없던 더위. 卽事: 여름이 닥치다. 斟量: 생각해 보다. 也似然: 응당 그러하다. // 自是: 스스로 그렇다고 하다. 凡情: 모든 정. 그렇게 여기다. 忘過去: 과거를 잊다. 天心: 하늘의 마음. 천심. 均一: 균일하다. 豈容偏: 어찌 치우침이 없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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