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38]

‘만인들이여! 저 사람 행실을 본받아라!’ 하면서 계몽적 계시적으로 지시하는 시문 흔적이 많았다. 이것이 몽매한 서민들과 아이들을 위한 유교적 교육 방침이었다. 시인의 주변 인물 중에 생원 시험에 합격했던 젊은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만인에게 귀감이 되도록 알리려는 시인의 우렁찬 함성 한 마디를 듣는 듯하다. 뛰어난 인재들을 망라하여 임금 은혜가 내리고. 신동을 꾸짖으니 천하 아이들 따라서 움직였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賀吳仲擧新格生員(하오중거신격생원) / 불우헌 정극인
뛰어난 인재 중에 임금님 은혜 내려
신동을 꾸짖으니 천하 아이 움직이네
한가한 제군들이여! 오군 행보 본받으라.
網羅英俊注恩波    訶喝天童動萬家
망나영준주은파    가갈천동동만가
爲報閑遊諸懶輩    吳生地步望如何
위보한유제라배    오생지보망여하

한가하게 놀기만 하는 나태한 제군들에게 알리노니(賀吳仲擧新格生員)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1401~1481)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뛰어난 인재들 망라해 임금 은혜 내리고 / 신동을 꾸짖으니 천하 아이들 따라 움직이네 // 한가하게 놀기만 하는 나태한 제군들에게 알리노니 / 학생 오군의 처지와 행보를 본받음이 어떨지]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오중거가 새로 생원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며]로 번역된다. 시적 상관자인 오중거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는 않다. 다만 시인과 알고 지내는 가까운 친지이거나 잔잔한 시상의 흐름으로 보아 후진일 것으로 추측은 된다. 처음으로 생원에 합격하면 어깨도 으스대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지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인은 생원에 합격한 것도 임금님의 은택이라는 시적 구성에 이어 여기를 채찍하면 저기가 움직인다는 엉뚱한 대답을 해본다. 뛰어난 인재들을 망라하여 임금님의 은혜 내려지면서 신동을 꾸짖으니 천하의 아이들 따라 움직인다는 시상이다. 엉뚱한 질문이다. 기둥을 치면 들보가 움직이는 현상 등은 상호의 연결고리와 맞물리게 된다.

 화자는 서정적 지향세계에 의한 한마디 고언苦言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겠다. 한가하게 놀기만 하는 제군들에게 알리노니, 학생 오군 처지와 행보를 본받음이 어떠할는지 라는 의문의 꼬리로 말문을 닫는다. 여운이자 여백의 아름다움이다. 똑 부러지게 말문을 닫게 되면 손쉬운 결론 때문에 도리어 앙갚음이 되어 개운치 못했던 경우를 생각할 일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인재 망라 임금 은혜 신동 책망 모두 같이, 제군들께 알리노니 오군 행실 본받기를’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1401~1481)으로 조선 전기의 학자이다. 1437년 세종이 흥천사를 중건하기 위하여 토목공사를 일으키자 태학생을 이끌고 부당함을 항소하다가 왕의 진노를 사 북도로 귀양을 갔다. 그 뒤 풀려나 태인에 거처하며 집 이름을 불우헌이라고 지었다.

【한자와 어구】
網羅: 망라하다. 英俊: 뛰어난 인재. 注恩波: 은혜의 파도 내리다. 訶喝: 꾸짖다. 天童: 신동. 動萬家: 만인들이 움직이다. // 爲報: 알리고자 하다. 閑遊: 한가하게 놀다. 諸懶輩: 나태한 모든 이들. 吳生: 학생 오군. 곧 생원이 된 오중거 학생. 地步: 처지와 행보. 望如何: 어찌 바라지 않으리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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