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37]

시인의 시상은 방안에 앉아 있어서는 떠오르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사물을 보면서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상황을 잘 비벼놓아야 한다. 그러면 내川가 되고 강江이 되는 작품이 된다. 그러다 보면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우제偶題 또는 무제無題를 붙이는 수가 많았다. 산에 사는 맛이 제재題材가 되었으니 그 맛은 ‘참맛’이었으리라. 띠를 엮어서 지붕의 이엉을 이고, 대를 심어서 대나무 울을 엮어 삼았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偶題(우제) / 태재 유방선
볏 집을 곱게 엮어 지붕을 이으면서
대나무 심어 놓고 울타리 삼았다네
해마다 산중의 맛일랑 갈수록알만하네.
結茅仍補屋    種竹孤爲籬
결모잉보옥      종죽고위리
多少山中味    年年獨自知
다소산중미      년년독자지

꽤나 한가하기만 한 산중의 기막힌 이 맛일랑(偶題)으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1388~1443)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띠를 엮어서 지붕의 이엉을 이고 / 대를 심어서 대나무 울을 엮어 삼는다네 // 꽤나 한가하기만 한 산중의 기막힌 이 맛일랑 / 시간이 갈수록 알만하지 않겠는가]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뜻하지 않게 제목을 놓다 / 산에 사는 맛]으로 번역된다. 시상의 흐름으로 보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에 시제를 하나 더 붙였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시제를 붙이면서 시상을 일으키는 수가 있는가 하면 뜻하지 않게 제목을 붙여 시심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시인은 이엉을 이고 울을 삼았던 경험을 되살리면서 시심의 문을 두드리는 시적지향세계를 맛보려고 했다. 띠 풀을 엮어 지붕의 이엉을 이고, 대를 심어서 대나무 울을 엮어 삼았다는 시상이다. 체험에 의한 선경의 밑그림이다. 자연뿐만 아니라 때로는 경험에 의한 주제가 좋은 경치구景致句가 되는 수가 많다.

화자는 산중에서 무슨 낙이 있어 살고 있느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이러 저러한 일로 그 맛들이 감칠맛 났음을 시적 그물에 잘 일구고 있다. 이렇게 꽤나 한가하기만 한 산중에서 있는 기막힌 이 맛일랑 모두가 시간이 갈수록 알만하지 않겠는가라는 스스로의 물음이다. 딱히 누구에게 대답을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대답을 해줄 만한 사람도 없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나마 이해했으면 된다]는 한 소망을 담았을 것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띠를 엮어 이엉 이고 대를 심어 울을 엮네, 기가 막힌 이 맛일랑 시간 가면 알겠지만’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 1388~1443)으로 조선 전기의 문인이다. 1409년 문망에 걸려 영양에 유배되어, 서당을 짓고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1415년 사면되어 원주로 돌아갔다가 다시 정배된 후 1427년(세종 9) 유일로서 주부 등의 벼슬을 내렸으나 더는 나가지 않았다.

【한자와 어구】
結茅: 띠를 엮다. 띠를 묶다. 仍: 이에. 곧 이어서. 補屋: 지붕을 보수하다. 지붕의 이엉을 덮다. 種竹: 대나무를 심다. 孤: 외롭게. 爲籬: 울타리를 삼다. // 多少: 다소, 혹은 꾀나, 山中味: 산중의 맛. 年年: 해마다. 獨自知: 홀로 스스로 알다. 스스로 터득하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저작권자 © 홍천뉴스 / 홍천신문 홍천지역대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