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심사위원

옛말에 “절차만 찾다가 신주 개가 물어 간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요즘에 딱 맞는 말 같다. 정부에서는 코로나19 전염병 사태에 따른 경제 붕괴 예고와 생계수단이 어려운 서민을 위해 수조 원의 예산을 집행한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지원금(생계비 소상공인 경영비)이 제대로 해당자에게 지급되는 절차와 시간 형평성과 기타의 조건 때문에 지지부진하다고 한다. 철저한 준비 부족과 책임한계 등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무상으로 지원하는 자금이야 형평성만 고려해서 잘 지원하되 속히 처리하면 되겠지만 소상공인(대기업도 어려운 경영자금은 같다)에게 지원하겠다는 경영자금은 융자 즉 대출금이다.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 때문에 서류 작성이 일반대출 업무와 대동소이하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어쩔 수 없는 실무자(대출담당자나 금융기관)들의 고충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후의 책임 때문이다. 결론 먼저 말하면 특별조치로 대출을 취급하도록 하고 여기에는 금융기관 직원(대출담당)뿐만 아니라 행정공무원도 대출심사에 동참해 최소한의 서류로 특별융자를 취급해야 한다.

1950년도 후반과 60년대 초 농어촌고리채정리 특별금융시책이 있었다. 당시 90%가 넘는 농어민들이 고리채(높은 이자의 사채)에 막혀 실질적인 농촌경제가 마비되다시피 하자 정부에서는 특단의 조치로 고리채정리를 단행했다. 이자는 탕감하고 고액의 원금을 장기분할상환으로 돌리며 소액은 전액 탕감 조치했다. 그 후 1970년대에 농촌부채탕감조치가 또 한 번 있었다. 이때는 정부가 농어민에게 대출했던 농가소득특별대출금과 일반서민의 빚을 정부에서 원리금을 탕감하는 말 그대로 특별조치였다.

철저한 실사로 대상자를 정했으며 형평성 원칙을 강하게 실천했다. 특히 고의로 부채를 만들은 토착세력자들은 제외시켰다. 엄격한 심사를 해서 부채탕감 대상자를 정했다. 조사자가 사심 없이 현실에 입각해 철저히 처리한다면 큰 부작용 없이 금융정책이 성공리에 이뤄질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김영삼정부 실명제 실시 때였다. 필자가 당시 군농협은행 예금담당 대리 자격으로 전국은행원 교육에 참석해 처음 금융실명제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철저한 보안 속에 긴급하게 소집해 발표했다.

처음에는 상당한 시행착오도 있었으나 큰 이변 없이 금융(예금)실명제는 성공한 금융정책이라는 후세사람들의 얘기다. 지금의 실명제가 바로 30여 년 전에 실시한 제도다. 이 제도를 실시하게 된 큰 동기는 지하자금의 현실화가 첫째고 해외도피자금 유출과 세원의 포착 등등으로 해보다는 득이 컸다는 조치이다.

현재의 소상공인 대출 취급도 간소하게 하면 된다. 은행업무 중 여신(대출)취급은 컴퓨터를 이용한 인터넷뱅킹으로 처리해도 된다. 일반 금융융자 취급으로 한다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우선 금융기관의 인적자원이 부족하다. 사업장에서는 하루가 바쁘다. 현재의 업무만도 빠듯한데 거기다 정부의 지원금 대출업무가 합해지면 지연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신용대출 한 건 취급하는데 보통 서류가 10여 가지쯤 된다. 거기다 신용등급이니 연체유무니 신용불량 등등을 가려내서 취급하려면 여간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사후관리도 문제다. 만약 그 대출이 부실이 된다면 최초의 책임자인 취급자와 결재책임자 등이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물론 취급 당시에 특별한 하자가 없다면 변상 내지 사고까지는 안 간다 하겠지만 문제가 복잡하다. 

해서 특별지원금에 대해서는 취급자나 책임자 내지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사후의 면책특권을 부여하고 대출 시행 시 국가보증제로 해야 한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국내에서 돌고 도는 자금인 만큼 “승수의 이론(경제이론으로 자금의 흐름)”에 입각해서 되도록 시기를 놓치지 말고 최대로 신속하게 지원해야 한다. “삶은 팥은 터져도 솥 안에 있다”고 한다. 돈이 빨리 돌아서 서민도 살고 소상공인도 살고 국가의 경제가 튼튼하게 되살아나는 마중물이 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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