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33]

정자에 앉아 나이 연만한 사람이나 아니면 순서를 돌려가면서 원운을 하나 지어 빙 돌아 앉아 돌려 읽고 차운하는 식으로 작은 시회詩會(?)는 능사였다. 흥이 익어갈 무렵에는 제각기 한 시창 한 마당을 했고, 이를 시조창으로도 불렀다. 멀리 사는 친우에게 서찰을 부칠 때도 시 한 수를 지어 보내 원운에 의한 차운을 하면서 교환했다. 장차 이월이 다하면 다시 삼월이 오리니, 한 해의 봄빛이 꿈속으로 돌아간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次韻寄鄭伯容(차운기정백용) / 교은 정이오  
이월이 장차 다하면 삼월이 오리니
한 해의 봄빛이 꿈속에 돌아가는데 
시절은 아름다운 것 누구 집에 꽃피나.
二月將闌三月來    一年春色夢中回
이월장란삼월래    일년춘색몽중회
千金尙未買佳節    酒熟誰家花正開
천금상미매가절    주숙수가화정개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아름다운 이 시절에(次韻寄鄭伯容)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교은(郊隱) 정이오(鄭以吾:1354~1434)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장차 이월이 다하면 다시 삼월이 오리니 / 한 해의 봄빛이 꿈속에 돌아가는구나 //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아름다운 이 시절에 / 술이 익는 누구네 집에서 꽃이 막 피려는 것인지]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차운하여 정백용에게 보냄]으로 번역된다. 정백용이란 사람이 시인에게 시 한 수를 보내왔거나 아니면 두 사람이 같이 앉아 시문을 주고 받았던 상황도 선뜻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상호 나누었던 운자는 같은 운자는 첫 구의 [來]자와 넷째 구인 [開]자를 놓았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정백용에 대한 인물은 검색되지 않아 그 행적을 찾을 수 없다.

시인은 한 달이 가고 다시 다음 한 달이 지나가면 결국은 한 해가 가면서 세월의 덧없음을 빗대는 시상이다. 이월이 장차 다하면 삼월이 다시 오리니, 한 해의 봄빛이 꿈속에서 돌아간다는 세월무상을 그려놓았다. 많은 이들이 세월의 무상함을 인생에 빗대어서 시상으로 일구어 놓았다.

화자는 이어지는 정구情句에서 세월이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 이러한 상황에서 술 익는 마을을 찾아 마음껏 취하는 뜻을 은유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천금을 주고도 모두 살 수 없는 아름다운 이 시절에, 우리 누구네 집에서 술 익는 내음으로 꽃이 막 피는가를 알아보자며 청유형 한 마디로 그림의 채색을 마친다. 이 좋은 시절을 우리 그냥 보내지 말고 취하자는 뜻을 내포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이월 가면 다시 삼월 봄빛 꿈속 돌아가네. 아름다운 이 시절에 누구네 집 꽃 피려나’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교은(郊隱) 정이오(鄭以吾:1354~1434)로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성품도 질박하고 겉치레가 없었다. 일찍이 이색과 정몽주의 문하에 들어 학문을 닦았는데 문장이 뛰어나 동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했던 인물이다. 1374년(공민왕 23년) 급제하였다.

【한자와 어구】
次韻: 남의 시의 운에 맞추어 시를 짓는 일. 二月: 2월. 將闌: 장차 다하다. 三月來: 삼월이 오다. 一年: 일 년. 春色: 봄빛. 夢中回: 꿈속에 돌아가다. // 千金: 천금. 尙: 도리어. 未買: 사지 못하다. 佳節: 좋은 계절에. 酒熟: 술이 익다. 誰家: 누구네 집. 花正開: 꽃이 막 피려고 하다(‘正’은 지금 바로).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저작권자 © 홍천뉴스 / 홍천신문 홍천지역대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