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심사위원

홍천에서 70여 년간 살면서 한 집안의 4대와 그분들의 가족과 현재의 삶에 대해 살펴보기로 했다. 먼저 필자의 경우다. 아버지(강춘성)가 1904년생이시고 어머니(이옥순)가 1901년생이시니 지금 생존해 계신다면 116세와 120세가 되신다. 두 분 다 1세기 전 사람들이시다. 특히 아버지가 1974년 67세로 어머니는 79세에 돌아가셨으니 그 당시로는 오래 사신 편이다. 그 후 필자와 아들 손자까지 있으니 4대째를 이루고 있다. 

필자의 숙부(강통천)와 필자의 사촌형(영석) 그의 장손(승헌 소방서 근무) 그의 아들 역시 4대다. 두 번째로 필자의 지인 정영환의 선친인 정낙일과 그의 손자 재헌 그의 자녀 역시 4대손이다. 

필자의 부친과 지인의 선친은 육체근로 노동자셨다.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힘든 일은 도맡아 하셨다. 그의 자손인 필자(처 주순예)는 군농협은행 지점장으로 퇴직하고 문인으로서 활동하고 자녀인 큰딸은 유아교육과 교수(사위는 카이스트 교수) 작은딸은 서울에서 학교병설유치원 원감이다. 외아들(승일 며느리 김현정)은 정형외과 의사(경기도 시흥시 시화병원 진료부장 겸 관절센터장)다. 손자는 동윤과 하윤 둘이다.

지인 정영환은 육군 대위로 월남파병을 두 차례나 하고 제대 후 면장(4개 면)과 강원인력개발원 사감 홍천군노인회 부회장 등을 했고 그의 외아들(재헌)은 춘천에서 토목측량회사를 직접 경영하고 있다. 여기 4대를 산 이웃들이 또 있다. 먼저 박동기(법무사)와 그 아들 박용묵(교장) 그의 손 박재영(자영업) 그의 아들이 있다. 허만훈(전 강원도의회 의장)과 그의 손자 허필홍(현 군수)이 그 자손이다. 

이태우(선익상회 경영)는 맏아들인 이상원(홍천주유소 대표)과 그의 아들 손자 등이다. 이종춘(강원도의회 의장)은 도의원이 되기 전 홍천양조장을 경영했다. 그의 아들 이광호는 육상선수 출신으로 필자의 중학교 때 은사님이다. 스페인 유니버스티 육상대회 높이뛰기 입상과 필리핀 마닐라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엄준달(구인당한약방 원장)이 있고 그의 아들인 엄경식이 대를 이어 인술을 펴고 있으며 그의 손 엄영석은 관광사업인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용환열은 초대 홍천축협 조합장이시다. 국궁회장도 했다. 그의 아들 용범중은 홍천읍장을 했고 그의 손 용호민은 자영업을 하고 있다. 물론 이분들 외에도 홍천군으로만 본다면 많은 분들이 계실 것이다. 허나 그분들은 필자와 직접 대면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부득이 생략했다.

이분들께서는 구한말에 태어나 혼돈의 세상을 사셨고 광복과 6.25 한국전쟁 때 청·장년을 보내셨다. 일제강점기 때 암울했던 시절을 겪었고 전쟁의 참혹 속에서도 가족과 나라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셨다. 물론 때와 장소와 자신의 처지는 서로들 달랐지만 어쨌든 열심히 사셨던 선대 어르신들이다. 그분들 중에는 권력의 위치에 있던 분들도 있었고 사업의 경영자로서 재력을 모은 분도 있다. 그런가 하면 육체노동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고 고생도 마다하지 않은 분들도 계셨다. 모두 다 의로운 분들이시다. 

그의 자손들도 대부분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다. 성낙신 단장의 경우 1960년대 서울로 이주한 후 거기서 작고를 했고 그의 아들 성진경과 그의 손 기영이 서울에 산다. 자녀가 많은 이태우(7남매)의 경우 유한회사 선익상회의 대주주로 있다가 다 처분하고 그의 둘째 아들이 정부미 도정공장을 운영했었다. 넷째 아들 이상준은 필자의 중학교 동창으로 서울의대 졸업 후 최근까지 서울에서 의술을 펴고 있다. 

보통 한세대를 30~40년으로 본다면 백여 년을 아래위를 보고 사는 셈이다. 이분들의 나이와 필자의 나이차가 많게는 50여 년이고 적게는 10에서 20년 차이다. 세월은 어쩔 수 없이 흘러가고 인간도 그에 같이 따라간다. 모쪼록 생존해계신 분들께선 건강에 더욱 유의하시고 이미 저세상에 가신 어르신들께선 이승의 자손들의 삶을 보살피며 영면하시길 자손의 한사람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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