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25]

얼음을 깨고 낚시하는 모습을 본다. 심지어는 두껍게 언 얼음을 깨고 얼음 위에 앉아서 낚시하는 강태공들을 만나서 겨울 스포츠, 때로는 겨울 레저용으로는 적당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선현들이 살았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해저에서 잠만 자기엔 답답했던지 얼음장 밑을 후비고 다니는 고기를 낚기에는 좋았던 모양이다. 눈 속에서도 봄은 오히려 춥지 않는데, 강 언덕 나무에 외롭게 피어있는 배꽃이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寒江釣雪(한강조설) / 안옥원
눈 속에도 봄날은 춥지가 아니하여
강가의 언덕에는 나무에 배꽃 피고
봄소식 알리어 주는 봄빛을 낚는구나.
雪中春不寒    江樹梨花看
설중춘불한    강수이화간
花下釣春色    新年報長安
화하조춘색    신년보장안

서울에서 가만히 알려주는 새해의 봄소식들이(寒江釣雪)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안옥원(安玉媛: ? ∼ ? )으로 여류시인인 규수문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눈 속에서도 봄은 오히려 춥지 않는데 / 강 언덕 나무에 외롭게 피어있는 배꽃 // 그 꽃 밑에서 하염없이 봄빛을 낚고 있는데 / 서울에서 가만히 알려주는 새해의 봄소식들이]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차가운 강에서 눈을 낚다]로 번역된다. 시제가 주는 시상이 한 차원 높게 보인다. 차가운 강에서 얼음을 깨고 고기를 낚는 일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겨울의 진풍경이다.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는 일도 겨울의 단골손님답게 흔히 볼 수 있는 풍속도다. 그렇지만 차가운 강가에서 우두커니 서서 눈을 낚는다고 했으니 봄을 기다리는 여심은 아마도 추운 겨울보다는 따스한 봄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눈 속의 봄은 오히려 봄 같지 않다는 시상의 주머니를 펼쳐 보인다. 눈 속에서도 살며시 찾아온 봄은 오히려 춥지 않게 느껴지는데, 강 언덕 나무에 외롭게 피어있는 배꽃을 생각해 보았다. 이 배꽃은 시인 자신을 이렇게 비유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화자는 꽃 밑에서 배꽃이 되어버린 자신을 치환시키는 멋을 부리고 있다. 그 꽃 밑에서 하염없이 봄빛을 낚고 있는데, 서울에서 가만히 알려주는 새해의 봄소식들이 들려오기를 바라고 있다. 이 봄소식은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조선 여심이리라. 시상의 흐름이 은유적인 포장지에 감싸였기 때문에 한 차원 높은 시적 지향세계를 맛보게 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눈 속 봄은 춥지 않고 외롭게 핀 국화만이, 꽃 밑에서 봄빛 낚고 서울 새해 봄소식을’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안옥원(安玉媛: ? ∼ ?)은 조선조 여류시인으로 규수부인인 것으로만 알려질 뿐 생몰연대와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한자와 어구】
雪中: 눈 속. 차가운 겨울. 春: 봄. 不寒: 춥지 않다. 江樹: 강 언덕 나무. 梨花: 배꽃. 看: 보다. // 花下: 꽃 아래서. 배꽃 밑에서. 釣: (봄빛. 봄의 햇빛을) 낚다. 春色: 봄 빛. 맑은 햇빛. 新年: 새로운 한 해. 報: 알려주다. 보내다. 長安: 장안. 서울.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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