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심사위원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왜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살아갈 것인가. 흔히들 쉬운 말로 죽지 못해 산다든가 먹기 위해 살고 또 살기위해 먹는다고들 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그렇기도 하다. 허나 조금만 생각하면 만사가 팔자소관으로 여겨지겠지만 오늘의 현실을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작년 추석을 전후해서 필자의 지인 두 사람이 사망을 했다. 평소 건강이라면 뒤지지 않던 두 분은 그라운드골프회원으로 매월 경기 때 참여했고 그 지인은 문화 활동도 같이 했다. 정의에 매진하고 모든 일에 솔선수범해 마당발이라고까지 했던 분이 추석 전 1주일쯤 앓다가 작고했다. 사회적 지위(노인회장)도 있었고 재력도 넉넉한 편이어서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어보이던 분이 불과 며칠 새에 저세상으로 갔다. 허망한 일이다.

또 한 분은 필자와 직접 접한 적은 없지만 같은 클럽 회원이었고 서울에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정년 후 가족과 같이 귀촌해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추석날 마당의 잔디를 깎다가 쓰러져 며칠 만에 사망했다고 한다. 이 두 분들의 사망으로 또 한 가족이 싱글맨 가족으로 살게 됐다. 올해 초에도 지인의 동창생과 1년 선배 두 분이 작고했다. 모두 살기가 원만했고 노후에 행복했던 사람들이다. 

이들 네 분의 생을 볼 때 우리들의 삶이란 참으로 허무한 면이 많다. 한평생을 아등바등 살다가 순식간에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란다. 사람은 살아있을 때 덕행도 쌓고 좋은 일도 해야지 아프거나 죽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재산이 아무리 많으면 무엇 하나 하루아침의 이슬인데 말이다. 긴 세월 속에서 간 사람은 가고 산사람은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법칙이라 하겠다. 

허나 기왕에 살고자 할 때 사람답게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일까? 유행가(트로트 또는 전통가요) 가사의 한 구절처럼 “욕 안 먹고 살면 되지” 하는데 과연 그 한마디로 우리들 현재의 처지를 다 대변할 수 있을까 싶다. 인간은 외로움 속에 살다가 외롭게 죽는다. 범인이나 성인이나 권력자도 모두가 가는 길은 같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곰곰이 되씹어볼 일이다.

어느 여가수의 트로트 노래에 “부초 같은 인생”이란 곡의 노랫말 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천년을 살 건가 몇 백 년도 못 살면서···”다. 우리 주변에는 마치 몇 백 년을 살 것 같은 사람들이 사뭇 많다. 정치가도 재력가도 사업가도 말이다. 인생은 세월이 가면 늙어가고 쇠약해진다. 자연의 심오한 법칙이다. 우리는 이런 자연의 섭리 속에 존재한다. 외롭고 쓸쓸한 사람도 그렇고 복 받고 행복한 사람도 이 속에서의 한 대열에 속할 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외로움을 나누고 슬픔과 괴로움을 서로들 위로한다면 반으로 준다고 말이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외로움은 외로움이고 쓸쓸함은 쓸쓸함이다. 자기만의 느낌이지 외부의 도움이 아니지 않는가. 평범히 살아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현실의 대처일 것이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겨울도 끝나고 새봄이 올 것이다. 스산한 겨울이 가고 있다. 지난 여름동안 그 무성했던 나뭇잎들도 낙엽이란 이름 아래 바람에 휘날리고 낮은 짧고 밤은 길다. 그 긴긴밤에 외로운 사람들은 더욱 많을 것이다. 외로움의 극복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뿐이다. 현실의 적응이 나에게 가장 바람직한 일상이 될 것이다.

세월은 가만히 있어도 간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시간이 해결한다. 시간이 쌓여서 세월이 되고 그 세월이 더해져 한 시대가 된다. 이제 겨울의 막바지에서 스님들은 동안거가 곧 끝나고 긴긴 겨울도 끝나게 될 것이다. 건강해야 외로움을 덜 느끼고 쓸쓸함도 덜 겪을 것이다. 모두가 막바지 찬 겨울에 조심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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