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009]

민간에 유행하던 노래를 한시로 채록하는 소학부 열한 수를 선사하셨던 시인께서 산 중에서 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밤을 맞이했던 모양이다. 온 세상이 하얀 소복을 입고 황제의 국상을 맞이하는 깊은 밤이었을 것이다. 시인이 걷기에 불편이 없도록 환하게 밝혀준 설야의 모습은 요즈음으로 말하면 전등을 방불케 했으리라. 종이 이불에 찬바람 일고 불등은 가물거리는데, 사미승은 하룻밤 내내 종을 울리지 않는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山中雪夜(산중야설) / 익재 이제현
이불에 바람 일어 불들은 가물대고
사미승 밤 내내 종 울리지 않는 구나
묵는객 성 내겠지만 소나무를 보누나.
紙被生寒佛燈暗      沙彌一夜不鳴鐘
지피생한불등암         사미일야불명종
應嗔宿客開門早      要看庵前雪壓松
응진숙객개문조         요간암전설압송

암자 앞 눈에 눌린 애잔한 소나무 보고자함인데(山中雪夜)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종이 이불에 찬바람 일고 불등은 가물거리는데 / 사미승은 하룻밤 내내 종을 울리지 않는구나 // 묵어가는 객이 일찍 문 연 것 응당 성 내겠지만 / 암자 앞의 눈에 눌린 소나무를 보고자함인데]란 시상이다.

위 시제는 [산중에 밤에 내린 눈]으로 번역된다. 산중에서 자고 일어나면 언제 내렸느냐 싶을 정도로 포근하게 눈이 내린 경우가 있다. 발이 빠지고 때에 따라서는 교통이 두절되어 오고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갇히기도 한다. 설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산중의 설경은 신의 조화를 연상하게 된다. 산중이면 다른 방법 없이 절을 찾아 하룻저녁을 묵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겠다.

시인은 사찰을 찾아 늦은 밤에 찬바람을 견디면서 밤을 지새우는 장면을 경험하게 된다. 종이처럼 얇은 이불에 찬바람은 일고 사찰에 밝히는 불등은 가물거리기만 한데, 사미승은 하룻밤 시각을 알리는 종을 울리지 않는다는 시상을 이끌어냈다. 비록 방의 아랫목은 따뜻할지는 몰라도 찬바람을 막아줄 만한 바람막이가 없는 것이 절집의 특징이다.

화자는 밤을 새워 날 새기를 기다렸다가 아침 일찍 절의 문을 열면서 시적인 반전을 시도한다. 하룻저녁 묵어가는 객이 일찍이 절문 여는 것을 응당 화를 내겠지만, 이는 오직 암자 앞의 눈에 눌려 꼼짝도 못한 소나무를 보고자 함이라고 했다. 엉뚱한 시적인 반전이 시도하여 시상의 격을 높이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종이 이불 불빛 가득 사마승도 잠이 깊고. 객이 먼저 문을 열어 눌린 소나무 보자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 1367)으로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시인이다. 원에 머무르는 동안 1316년 충선왕을 대신하여 서촉의 명산 아미산을 찾아 3개월 동안 머무르기도 했다. 그의 문집 제4권에 당시에 민간에 널리 유포되었던 우리 노래 11수를 칠언절구로 번안해 채록해 두었다.

【한자와 어구】
紙被: 종이 이불. 生寒: 찬바람이 일다. 佛燈暗: 불등이 가물가물하다. 沙彌: 사마승. 一夜: 한 밤에. 不鳴鐘: 종을 울리지 않다. // 應嗔: 응당 성내겠다. 宿客: 묵어가는 객. 開門早: 일찍 문을 열다. 要看: 보고자 하다. 庵前: 암자 앞. 雪壓松: 눈에 눌린 소나무.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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