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을 걸었다.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무거운 사명감으로 앞만 보고 걸었다. 인생에 희로애락이 있듯 교직생활에도 기뻤던 일,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이 혼재해 있다. 우직하고 지혜롭지 못한 탓에 늘 내 주변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고 때로는 본의 아니게 이런저런 피해를 끼치기도 했다.

하지만 뒤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길은 온통 꽃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누리기 어려운 영광을 누렸다. 학창시절 꿈을 키웠던 모교에서 교사로서 후배들에게 열정을 펼칠 수 있었고, 교감으로 근무하면서 명문고로 위상을 높이고자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고, 교장으로 근무하면서 ‘KBS 도전 골든벨’에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등 정점을 찍었다.

모교에서 교사, 교감, 교장을 명예롭게 마친 후에는 대한민국 최북단 평화와 통일의 상징인 고성군에서 교육지원청 교육장으로 근무하며 관용차를 타고 출장을 다니는 등 교육행정가로서 교직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돕고 하늘이 도왔겠지만 나의 역량을 인정하고 기회를 준 민병희 교육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체육교사로 교직에 입문했다. 홍천고 1회 졸업생으로 선배가 없고 교직의 고위직에 은사님 또한 계시지 않았던 내게는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성실함이 가장 큰 자산이었다. 첫 발령지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학생에게 하숙방을 공부방으로 빌려줬던 것이 내 교직생활의 터닝포인트였다.

교직의 꽃은 담임이다. 그것도 일반계고등학교에서의 3학년 담임이 꽃 중의 꽃이다. 우격다짐으로 학력을 신장시키기도 했지만 진로지도에서 만큼은 철저한 분석과 상담으로 학부모들로부터 인정받는 진로진학 우수교사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전공 교과인 체대입시 부문에서는 최고의 전문가라는 명성과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홍천고등학교에서는 8년 연속 근무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순환근무를 해야 하는 공립학교의 원칙에 의하면 3년이나 유예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으나 학교 측에서는 그만큼 다른 학교로 보낼 수 없는 고민과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서 함께 담임을 맡았던 동료교사들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교직생활 중 가장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시기는 횡성여자고등학교 교무부장 시절이었다. 일반계와 특성화학과가 함께 운영되는 종합고등학교 성격의 학교에서 교무부장의 업무를 맡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회의나 연수 때마다 체육교사 출신이 어떻게 교무부장을 맡았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체육교사로서 운동부를 맡아 지도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첫 부임지에서 육상부와 핸드볼부를 맡았고 모교인 홍천고에서는 역도부를 맡았으나 고3 담임으로 기술이 아닌 행정적인 지원을 했다. 사대부고에서는 농구부를 맡아 방학 때마다 전국을 돌며 경기력 향상을 위해 땀을 흘려야 했고 영광의 상처로 감독 자격정지 6개월이라는 징계를 받기도 했다.   

강원도 중등체육교사들의 모임에서 사무국장을 거쳐 회장의 중책까지 맡아 체육교사들의 단합과 권익보호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회의가 활성화되어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함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나의 정성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평창올림픽과 때를 같이 해 강원도교육감인정도서 「빙상 및 설상운동」 교과서 저술활동도 했다.

교직의 바쁜 와중에도 세권의 책을 발간했다. 제자들과의 경험담을 엮어낸 「도전 그 아름다운 이야기」, 체육교육과 관련된 생각을 모은 「체력은 최고의 국가경쟁력」, 딸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전하는 「딸에게 주는 아빠의 편지」 등 세권이다. 또한 주간지인 홍천신문에 뜨거운 애향심으로 칼럼코너를 운영해 오고 있다. 타향살이 중에도 열심히 썼다.

선생님이 존경받는 시절 교직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는 선생님이 존경받는 시대상황이 아니다. 학생인권이 강조되면서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떠나게 되어 마음이 무겁다. 37년 간 걸으며 터득한 것은 ‘교육에 왕도는 없다’라는 것이다. 그동안 도움을 준 가족, 제자, 동료 등 주변의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영욱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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