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001]

친구가 술병이 들어 그만 눕고 말았다. 죽이며 미음으로 속을 풀기도 했으리. 친한 친구들이 찾아와 위로의 말도 전한다. 시상이 발랄하고 재치가 있으면서 곧잘 농담 잘하던 백운거사인지라 이 장면을 가만두지 못했던 모양이다. 지필묵을 대동터니 일필휘지를 써내려 가는데 상대는 놀라서 뒤로 넘어졌을 것이니. “자네는 필시 누룩귀신 때문일세 그려, 아황주 다섯 말쯤 새벽마다 걸치시게 누룩귀신이 도망갈 것”이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戱友人病酒未起(희우인병주미기) 
/ 백운거사 이규보

내 노련한 의원이라 병을 잘 진단하네
누룩귀신 때문이니 아황주 다섯 말을
새벽에 걸쳐보시게, 이 약이 비방일세.
我是老醫能診病    誰爲祟者必麴神
아시노의능진병       수위수자필국신
鵝黃五斗晨輕服    此藥傳從劉伯倫
아황오두신경복       차약전종유백륜

내가 바로 노련한 의원이라 병을 잘 진단하네(戱友人病酒未起)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백운거사 이규보(李奎報:1168~1241)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내가 바로 노련한 의원이라 병을 잘 진단한다네. / 무엇 때문에 그리 되었는고 필시 누룩귀신 때문일세. // 아황주 다섯 말을 새벽마다 걸치시게 / 이 약이 유백륜에게서 전해 오는 비방일세.]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술병으로 못 일어난 친구에게 우스갯소리]로 번역된다. 친구가 술병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누워있는 친구를 찾아가 이참 저참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로의 말 한마디를 전달했던 것은 예삿일. 필경 주고받은 덕담이 오고갔을 것이다. 슬며시 농담 삼아 누워 있는 친구를 골려 주고 싶었던 충동이었겠다.

시인은 지필묵을 대동하여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 재치를 발휘하면서 대담한 목청을 다듬어 가면서 읊었다. 여보게 친구 내가 바로 노련한 의원이라 병을 잘 진단한다네. 자네가 무엇 때문에 이리 아프게 되었는고 하니, 필시 누룩귀신 때문일세 그려 하고 은근히 골려주었다. 이 선문에 친구는 의아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의 시상을 더 듣고 싶어 귀를 쫑긋이 세웠다.

화자의 일필휘지는 더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자 그럼 내 처방을 내림세. 오늘부터 자네는 아황주 다섯 말을 새벽마다 걸치시게 바로 이 약이 유백륜에게 배운 내 비방일세 그려 했다. 아황주는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던 우리 술이며, 유백륜은 평소엔 1곡(10두)씩, 해장으론 5두씩 술을 마신 사람이란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의원이라 병을 진단하네 누룩귀신 때문이니 새벽마다 다섯 말이 유백륜의 처방일세’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1168~1241)로 고려의 문신이다. 진사시에 말석으로 급제한 것이 싫어 사퇴하려고 했으나 전례가 없었으므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퇴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22세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신분이 낮은 집안 출신인 탓에 10년간 관직에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한자와 어구】
我: 나. 是: 바로. 老醫: 노련한 의원. 能診病: 병을 진단하다.  誰爲: 무엇이 되다. 祟者: 빌미됨. 必麴神: 반드시 누룩 귀신 // 鵝黃: 아황주. 五斗: 다섯 말. 晨輕服: 새벽에 복용함. 此藥: 이약. 傳從: ~따라서 전해오다. 劉伯倫(유백륜): 죽림칠현의 한 사람. 평소엔 1곡(斛)씩을, 해장으로 5두(斗)했다고 함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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