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며칠 전 음력 7월이 지났다. 8월 달은 음력과 양력의 달력일자가 같이 갔다. 때문에 양력이 곧 음력일이고 음력이 또 양력일이었다. 벌초는 원래 음력 7월 그믐 안쪽에 한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 유래는 민족 세시풍습에 의하면 7월 그믐 안에 벌초를 하면 양반이고 8월에 하면 천민이라고 했다.

요즘이야 양반 천민이 없지만 불과 100여 년 전 즉 갑오개혁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양반제도가 있어 그 기세가 등등했다. 그 내용을 보면 당시(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 전국의 토지소유는 대부분 양반의 것이고 천민은 소작을 했기 때문이다.

소작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벌초답이다. 즉 벌초를 대신 해주고 농경지를 부쳐 먹는 거다. 허니 농지주인 즉 양반의 묘를 먼저 깎아주고 난 후에야 내 조상 묘를 깎기 때문에 조금만 시차가 나면 내 조상 묘는 8월에 벌초를 하게 된다. 그래서 나온 것이 묘의 벌초한 것만 보고 양반네니 양민(천민)네가 구분됐다고 전해온다.

요즘은 어떤 벌초 날이 따로 없고 공휴일을 잡아서 편한 대로 한다. 필자도 그렇다. 윗대 때에는 꼭 음력 그믐날(말일) 했다. 하지만 필자의 대에 와서는 그믐날 기준 가장 가까운 공휴일(일요일)을 택해서 한다. 동면 좌운리에 선산이 있어 그날에는 온 일가친척들이 모여 벌초를 하고 집안의 얘기들로 시간을 끝낸다.

벌초란 조상의 묘에 난 풀을 일 년에 한 번씩 깎아 주는 일이다. 더러는 금초라는 말도 쓰는데 사전에는 없고 요즘은 쓰지 않는다. 그렇다면 벌초도 효(孝)에 들어가는가? 필자의 의견은 벌초도 효의 한 차원에 속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 조상의 자손들이 있기에 묘를 돌보기 때문이다. 비록 혼령이 있다 없다 정의하기 전에 돌아가신 조상님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묘를 돌본다는 것은 후손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 후손이 한 가족 즉 종가를 이어간다는 의미에서도 효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효란 무엇일까? 효란 자식이 부모를 정성껏 잘 모시는 것이다. 그리하려면 자식이 잘 되어야 한다. 그러나 유교나 동양에서는 자식의 개념이 아들 즉 남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약간씩 달라질 수가 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딸은 출가를 하면 그쪽(신랑) 집에 호적과 같이 모든 게 종속되기 때문에 친정과는 자연히 거리가 멀어진다.

물론 상속이나 증여 등 재산문제에 있어서는 법과 관례관습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 자식(아들)이 없으면 벌초는 누가 하나. 즉 대가 끊기면 말이다. 물론 벌초대행업체에 맡기면 된다. 그런데 그 과정을 누가 한단 말인가. 해서 요즘 필자의 주변엔 조상(부모까지)의 묘 자체를 파손해서 없앤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들이 홀가분히 있다가 가겠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얘기다.

그렇다보니 현재 자식들(남·여)이 효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게 된다. 모든 게 살아있을 때 효도도 받고 부모자식 간에도 상부상조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한다. 필자의 후배지인이 교사를 하다가 정년이 임박했을 때 그 아들이 공부를 잘해서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의대는 여타 대학에 비해 학비가 몇 배 비싸고 책값도 많아서 돈이 많이 들어간다. 기간도 완전히 전문의 하나 되려면 15년이 걸린다.

그 지인은 매월 받는 연금으로 안하고 일시불로 몇 억을 받아서 그 아들의 학비에 충당했다. 아들은 전문의가 되고 지방에서 병원을 개업해 결혼하고 애들 낳아서 잘 사는데 문제는 그 지인 자신이 문제가 됐다. 즉 생활비가 없어서 80이 다된 나이에 노동(일용직) 즉 품팔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집도 없어서 월세를 전전하면서 말이다. 며느리와 아들은 떵떵거리며 사는데 정작 부모는 극빈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농사는 잘 지었는데 수확을 잘못했다”는 얘기들을 나눈다. 부모도 잘살고 자식도 잘사는 더불어 잘사는 것이 부모자식 간의 행복이고 효가 아닐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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