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신다는 손님과 나 사이가 거리가 여러 겹으로 둘러 싸여 있어 비록 거리는 멀지만 마음만은 가깝다는 시상이 한껏 묻어나는 작품의 면면을 본다. 얼마나 초조하게 기다렸으면 쓸쓸하게 슬픔이 묻어난다고 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게 한다. 오겠다는 약조가 있었던 사람이 오지 않으면 기다려지는 심정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가는 바람이 나뭇가지에 부딪치어 자꾸 흔들리고, 쓸쓸하게도 나의 슬픔이 더해만 간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南樓中望所遲客(남루중망소지객)[3] / 고봉 기대승
미세한 바람이 나뭇가지 부딪치어
쓸쓸하게 나의 슬픔 더하여 가는데
생각만 지척 같아서 구름 낀 산 가른다.
微風激樹枝    瀟瀟助余慽
미풍격수지      소소조여척
重城想如咫    渺渺雲嶺隔
중성상여지      묘묘운령격

아득히 먼 구름 낀 산이 가로막는구나(南樓中望所遲客3)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율시다. 작자는 기대승(奇大升;1527~157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가는 바람이 나무 가지에 부딪치어 자꾸 흔들리고 / 쓸쓸하게도 나의 슬픔이 더해만 가는구나 // 여러 겹의 성이건만 생각만은 지척에만 있는 것 같아서 / 아득하게도 먼 구름이 낀 산으로 막히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남루에서 늦게 오는 손님을 맞다(3)]로 번역된다. 전구에서 시인은 [멀리멀리 바라본 지 이미 너무 오래 되었으니 / 여러 곳 배회하면서 해가 저물까 근심스러워라 // 긴 호수 넓은 곳에 밝은 달이 깊숙하게 잠기었는데 / 나는 이제 누구와 함께 정담을 나눌 것인가]라는 자기의 심회를 읊고 있다. 멀리서 오겠다는 손님을 기다리다가 지친 나머지 초조한 시인의 마음을 그대로 노출해 내고 있다.

이어서 시인은 손님이 오지 않는 처지를 자연이란 객관적 상관물에 빗대어 표현해 보인다. 가는 바람 나무 가지를 살며시 부딪치어, 쓸쓸하게도 기다리다 지친 나의 슬픔을 더하고 있다고 했다. 기다리던 손님을 기다리는 심정을 경험하지 못했던 사람의 그 심정을 모두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화자는 지금까지 오지 않는 손님과 본인이 있는 곳까지의 거리가 여러 겹으로 둘러 싸여 있다는 표현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겠다. 손님이 있다고 보는 거리가 아마도 여러 겹의 성이건만 생각만은 지척 같아서 아득히 먼 구름 낀 산이 막히었다는 기다리는 안타까운 심회를 담아내고 있다. 초조하기 그지없는 시심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가는 바람 흔들리고 내 슬픔은 더하구나, 여러 겹 성 지척인데 구름낀 산 막혔구나’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다. 물재공의 훈계하는 글이 있었는데 이를 마음 속에 깊이 새겨 종사하였으며 자신을 위하는 학문에 뜻을 정하여 날마다 부지런히 애쓰면서 과거 공부는 멸시하였다. 많은 저서를 남기는 독실한 길을 걸었다.

【한자와 어구】
微風: 가는 바람, 미풍. 激: 치다. (바람) 심하게 치다. 樹枝: 나무 가지. 瀟瀟: 소소하게. 쓸쓸하게. 助余慽: 내 슬픔을 도와주는구나. 내와 슬픔을 함께 하다. // 重城: 여러 겹으로 된 성. 想: 생각. 생각하니. 如咫: 지척인 것 같다. 渺渺: 아득하다. 雲嶺隔: 구름이 고개를 끼었다. 혹은 막혔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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