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는 글자 그대로 남쪽에 있는 누각이다. 사방위 중 동은 해가 떠오르는 찬란함을 간직함 때문에 제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대체적이며, 남쪽은 그 햇빛을 받아 중천에 떠있는 햇살은 따뜻함의 상징이다. 그래서 흔히들 남창南窓이라고 했다. 남루도 이런 면에서는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남루에서 늦게 오신 손님을 두고 긴 호수 넓은 곳에 밝은 달이 깊숙하게 잠기었는데, 나는 이제 누구와 함께 정담을 나눌까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南樓中望所遲客(남루중망소지객)[2] / 고봉 기대승
멀리 멀리 바라본지 오래도 되었느니
여러 곳 배회하며 해저물까 근심인데
호수에 달 잠겼으니 함께 정담 나눌까.
遙遙望已久    徘徊愁日夕
요요망이구      배회수일석
長湖蘸明月    晤言誰與適
장호잠명월      오언수여적

나는 이제 누구와 함께 정담을 나눌 것인가(南樓中望所遲客2)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율시다. 작자는 기대승(奇大升;1527~157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멀리멀리 바라본 지 이미 너무 오래 되었으니 / 여러 곳 배회하면서 해가 저물까 근심스러워라 // 긴 호수 넓은 곳에 밝은 달이 깊숙하게 잠기었는데 / 나는 이제 누구와 함께 정담을 나눌 것인가]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남루에서 늦어 오는 손님을 맞다2]로 번역된다. 전구에서 시인은 [뭇 꽃들은 비로 쓸어낸 듯이 적막하기만 하고 / 봄은 왜 이다지도 빨리만 가는 것일까 // 깊은 이 감회를 아직 스스로 쏟지도 못했는데 / 이처럼 마음에 맞는 손님이 있어야 하겠는데]라고 했다.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초조한 마음을 감출길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만날 것이라는 간곡한 시인은 마음 한 가닥을 모아서 읽어낼 수 있었다. 멀고도 멀리서 바라본 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여러 곳을 배회하며 해가 저물까 행여나 근심스러워라라는 시심 덩어리다. 여기에서는 그대로 손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실날 같은 희망이나마 담고 있어 보이지만 화자의 입을 빌은 시인의 심정은 낙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화자는 자연이란 객관적 상관물이 다소를 원망해 보이는 야릇한 심정까지도 가볍게 나타난다. 긴 호수에 밝은 달이 깊이 잠겼으니, 나는 과연 오늘밤에 누구와 함께 정담을 나눌 것인가라는 심회어린 마음 한구석을 가볍게 보인다. 여기에서는 지금까지도 오지 않는 손님인데 더는 기다릴 것이 없음을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멀리 보아 오래되어 배회하니 근심하고, 긴 호수에 밝은 달은 뉘와 함께 정담할까’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다. 여덟 살에 모부인이 졸하자 대단히 슬퍼하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3년 상을 다 마치고 향리의 서당에 나아가 글을 배우며 학업에 더욱 부지런하였으며 시구를 지으면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고 전한다.

【한자와 어구】
遙遙: 멀리멀리. 望: 바라보다. 已久: 이미 오래다. 徘徊: 배회하다. 서성거리다. 愁: 근심스럽다. 日夕: 날이 저녁이다. 날이 오래다. // 長湖: 넓고 긴 호수. 蘸: 담그다(담글 잠). 明月: 밝은 달. 晤言: 밝은 말. 마주 대하는 서로의 대화함을 상징함. 誰與適: 누구와 더불어 조우할까? 혹은 만날 수 있을까?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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