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전국 200여개가 넘는 시·군단위에서 홍천군의 땅 면적이 제일 크다고 한다. 제주도의 부속 섬을 뺀 것과 같다고 하니 크긴 큰 편이다. 6.25 한국전쟁이 난지도 어언 69년이 됐다. 그동안 홍천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이야기 몇 가지를 해본다.

먼저 홍천군은 6.25 한국전쟁 당시 현재 인제 남면지역 일부가 홍천군이었다. 인제군 남면 어론리 38도선 아래가 홍천군 땅이었다가 인제군이 독립하면서 인제군으로 편입되고 지금은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와 인제군 어론리가 경계가 됐다. 내면 미산리와 내촌면 상남리도 홍천군에 속해 있다가 인제군으로 편입됐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동면 좌운리에 동면이 있기 전 즉 1917년경에 연귀미면이 있다가 일제강점기 때 지적과 행정조직단위를 개편하면서 현재 동면이 속초리에 면소재지를 정했다. 좌운리의 연귀미면은 없어졌다. 당시는 현재의 횡성군 갑천면 변지방리와 공근면 상동리 부창리 행정리 가곡리 상·하창봉리 일대가 홍천 좌운리 연귀미면에 속했다가 횡성으로 편입됐다. 

그 후 1970년 중반에 홍천군 북방면 북방리가 춘성군으로부터 분리 홍천군에 편입됐고 전치곡리 일부가 춘성군으로 갔다. 홍천읍의 경우 상오안리가 남면에서 홍천읍으로 편입됐다. 1953년 휴전직후 홍천읍에 그 당시로는 잘 지은 기와집 수십 채가 있었다. 그 대표적으로 현재 홍천축협 뒤편에 ㄱ자집 두 채가 있었는데 한 채는 5년 전 철거해서 축협주차장으로 쓰고 또 한 채 역시 최근에 철거해 역시 축협주차장으로 쓰고 있다.

그리고 홍천초등학교 앞 100여m 지점(학다리 근처)에 주점 민성관이 있었는데 역시 2019년 초에 철거했다. 이 민성관 주점은 일반시내 주점보다 한 단계 높은 소위 요정집으로 접대부 10여 명씩을 둔 고급 주점이었다. 이 민성관(경영자가 민 씨였다) 외에 제일관(지금의 축협진리지소 앞)이 있었고 홍천관광호텔 뒤편 삼천리연탄판매점 뒷골목 역시 전성관이라고 해서 고급요정이 있었다. 연봉다리 건너에 개풍관이 있었고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대천옥이 현 구시장 서쪽(종합시장부지 문화센터 신축 터) 50여m 쯤에 있었다.

1953년 홍천 최초의 다방(고향다방)이 현재 진리 중화각 이층에 있었다(현재 건물은 그 후 증·개축 했음). 그 외에도 대형 식당 여관 술집(대포집) 등등 많았으나 이 내용은 지나간 기고에서도 다룬 적이 몇 번 있어 생략한다.

홍천에는 홍천읍 앞을 흐르는 화양강(요즘은 홍천강이라 부른다)이 있다. 그런데 며칠 전 신문에 보면 홍천강과 평창강이 지방하천에서 국가하천으로 승격돼서 지방하천일 때보다 배나 많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어쨌든 보조금이 많이 나온다니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화양강이란 이름은 싹 빼먹었다. 몇 천 년 몇 백 년 내려오던 강이 근세에 와서 소리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내용도 그렇다. 홍천강의 시점은 내촌천과 두촌천이 합쳐지는 철정 앞에서부터 춘천시 남면 매곡리 앞까지라고 했다. 그렇다면 홍천군 서면 반곡리 개야리 두미리 마곡리까지 흐르는 강 이름은 뭘까? 어차피 홍천강이라고 할 것이라면 철정리부터 굴지리(굴지리 화양초등학교 앞 현재 폐교) 앞까지는 화양강이라고 쓰고 그 이하는 홍천강(대동여지도에 표시돼 있음)이라고 부르면 좋을 것 같다.

홍천은 석화산 남산(거북등) 두개비산 공작산 오룡산 등이 그림같이 둘러싸고 있고 그 가운데로 화양강(홍천강)이 흐른다. 필자의 유년시절 여름날 밤이면 성인 남녀들의 대중목욕탕이 되고 낮에는 청소년들의 물놀이 터가 되는 화양강 맑은 물은 홍천군민이라면 추억의 한 장면이고 타지에 사는 이주 군민들 가슴에 어린 회상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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