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겠다는 손님이 늦게 오면 기다려진다. 마음도 초조하고 늦게 온 이유가 알고 싶어진다. 그가 고위직에 있거나 나이가 연만한 어르신이시면 더욱 그렇다. 요즈음 같으면 전화를 하고 사람을 시켜서 알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선현들이 살았던 그 시대엔 그럴 수조차 없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이 잘 나타나 있어 시상의 멋이 쏟아진다. 깊은 감회를 아직 스스로 쏟지도 못했는데, 이처럼 마음에 맞는 손님이 있어야 하겠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南樓中望所遲客(남루중망소지객)[1] / 고봉 기대승
무리의 꽃들은 쓸어낸 듯 적막하고
봄날은 왜 그리도 빠르게 가는 것일까
감회를 쏟지 못해서 마음에 맞는 손님인데.
郡芳寂如掃    春去何促迫
군방적여소      춘거하촉박
幽懷不自寫    要此素心客
유회불자사      요차소심객

이처럼 마음에 맞는 손님이 있어야 하겠네(南樓中望所遲客1)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율시다. 작자는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뭇 꽃들은 비로 쓸어낸 듯이 적막하기만 하고 / 봄은 왜 이다지도 빨리만 가는 것일까 // 깊은 이 감회를 아직 스스로 쏟지도 못했는데 / 이처럼 마음에 맞는 손님이 있어야 하겠는데]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남루에서 늦게 오는 손님을 맞이하다(1)]로 번역된다. 손님이 오기로 약속하면 주인은 며칠을 두고 청소를 한달지 부산을 떤다. 때에 따라서는 가구家具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재배치를 하는가 하면, 내자들은 며칠 전부터 술을 거르고, 반찬을 마련하는 등 온통 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오신 손님이 당일치기로 돌아가면 부담은 적겠지만, 하룻저녁을 자고 간다면 그 부담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인의 집에서는 이런 준비를 다 마쳤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 편으로 초조하게 기다리는 마음을 읽게 된다. 자연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모습을 본다. 손님을 맞이하려는데 뭇 꽃들은 비로 쓸어낸 듯 적막하고, 봄은 왜 그다지 빨리 가는 건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봄의 소묘素描 한 장을 살며시 그려내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화자는 손님과 약속을 했으니 확실히 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차 있다. 손님을 맞아 대화 나눌 생각에 깊은 감회를 스스로 쏟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처럼 마음에 맞는 손님이 있어야 하겠다고 했다. 시상에 풍기는 내용으로 보아 매우 귀한 손님을 맞을 준비에 바빴음을 알게 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뭇 꽃들은 적막하고 왜 이리 빨리 가는가, 깊은 감회 쓸지 못해 마음 맞은 손님 없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다. 그는 5, 6세가 되었을 때 침착하고 묵직함이 성인과 같았다고 한다. 일곱 살 때부터 글공부를 부지런히 하면서 과제를 읽고 외웠으며 새벽에 일어나 단정히 앉아 저녁까지 글을 외었다. 이황의 문인으로 알려진다.

【한자와 어구】
郡芳: 많은 꽃. 寂如掃: 비로 쓸어내듯이 적막하다. 春去: 봄이 가다. 何促迫: 어찌 이다지 빨리 가는 걸까. // 幽懷: 깊은 감회. 不自寫: 스스로 쓸지 못하다. 要此: 이를 원하다. 이와 같이 원하다. 素心客: 마음에 맞은 손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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