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陣中에서 공격하라는 명을 기다리는 병사들의 마음은 초조하기 그지없다. 결연한 의지로 똘똘 뭉쳐진 병영의 밤은 깊어 날이 더디게 샌다. 새벽이면 공격하리라는 한 가지 신념이 불타고 있거늘 주위는 미동微動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음속에 일만 마리의 말이 달리니 이미 마음은 적진을 향해 있었으리라. 이미 장사(壯士)의 마음속에는 일만 말(萬馬)들 달리는데, 날이 새기를 기다리자니 이토록 밤이 길기만 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陣中吟(진중음) / 나옹 이정
나뭇잎 떨어져 산 모습은 고요하고
하늘은 높고 높아 달빛만 밝은데
장사를 기리는 마음 날 새기를 기다려.
水落山容靜    天高明影肥
수락산용정      천고명영비
壯士意萬馬    得旦夜漫長
장사의만마      득단야만장

날이 새기를 기다리자니 이토록 밤이 길기만 한데(陣中吟)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나옹(懶翁) 이정(李楨:?~1943)으로 순국지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나뭇잎새 떨어져서 산 모습은 고요하고 / 하늘은 높아서 달빛이 더욱 밝구나 // 장사(壯士)의 마음속에는 일만 말(萬馬)들 달리는데 / 날이 새기를 기다리자니 이토록 밤이 길기만 하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군의 진영 안에서 읊다]로 번역된다. 시상이 넉넉했던 사람은 진중의 잠깐 쉬는 틈을 타서도 시상을 일으켰다. 이순신의 시 진중음이나 ‘한산섬 달 밝은 밤에---’의 시조작품도 마찬가지다. 적군 이동이 심한 밤에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밤을 새우면서 진중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작은 것 속에서 큰 것을 찾으려는 야심찬 지사리라.

시인은 적막이 깃드는 이국에서 적의 동태를 파악하는 선경(先景)의 시상을 잘 그려내고 있다. 소소한 바람 부는 가을이었던 모양이다. 나뭇잎새가 하나 둘씩 떨어지면서 산 모습은 고요도 고요하였다고 하면서 하늘은 더없이 드높아서 달빛만은 더욱 밝다고 했다. 개미 한 마리 다람쥐 한 마리도 바스럭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았던 적막한 밤이었던 전경을 그려냈다.

화자는 하늘을 부여잡고 씨름이라도 하고 싶었던 충동감에 사로잡혔겠다. 장사(壯士)의 마음속에는 적진을 향하여 일만 말(萬馬)이란 많은 말들이 달리고 있는데, 말달리는 그런 기상을 담아 날이 새기를 기다리자니 이토록 밤이 길기만 했을 것이다. 어서 적을 무찔러야겠다는 깊은 심사를 덧칠해 보이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산 모습은 고요하고 하늘 높은 달빛 밝고, 일만 말도 달리는데 날이 새나 밤은 길고’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나옹(懶翁) 이정(李楨:?~1943)이다. 위 시는 피비린내 나는 만주벌판의 청산리 전투 중에 쓴 시문으로 알려진다. 북만주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김좌진 장군 수하에서 맹활약했던 장군이다. 일제말기에 북만주 동경성에 대종교 천전(天殿)을 세우려다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한 애국지사다.

【한자와 어구】
水落: 물이 떨어지다. 물이 떨어지니 나뭇잎도 떨어지다. 山容: 산 모양. 靜: 고요하다. 天高明: 하늘은 높고 맑다. 影肥: 달그림자가 살찌다. 곧 달그림자가 밝다. // 壯士: 장사. 여기선 의병장. 意: 마음속. 마음의 의중. 萬馬: 일만 말. 말들이 달리다. 得旦: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다. 夜漫長: 밤이 길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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