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일. 새벽 2시가 되어서 치즈피크(6,202m) 베이스에 도착했다. 고도가 높은 탓에 제법 쌀쌀하다. 피곤하지만 비구니스님이 사용하는 창고에 카고백을 정리하고 3시가 넘어 침낭에 들어간다. 9시에 일어나 오늘은 예비일로 잡고 식량과 공동장비, 의약품을 Camp1과 정상공격용으로 정리하고 체크했다. 정부연락관과 산악가이드를 만나 행정적인 회의를 하고 대원들 간에 미팅을 가졌다.
웬만큼 정리하고 밖으로 나와서 비구니 스님만 계시는 □형구조의 사원으로 구경 갔다. 조캉사원보다는 작지만 아름답다.
관광객이 없으니 조용하고 정말 사원 같다. 단청도 멋지고 벽화도 예술이다. 오랜만에 달콤한 휴식을 가져본다. 내일 캠프1까지 간다. 정상에 설 수 있을까. 오지탐사대이니 만큼 욕심부리지 않겠지만 치즈피크 정상에 서고 싶다. 지평선 너머로 구름이 내 눈 높이에 있다 높긴 높아 보인다.
왼쪽 설산에 눈이 오고 이곳은 비가 내린다. 심한 일교차이다. 신이 사는 곳이다. 내일부터는 희생하는 마음으로 등반하고 싶다. 행여 정상에 서지 못하더라도 대원들에게 최선을 다할 것을 스스로 약속해 본다.
4일. 아침에 일어나 짐을 싼다. 캠프1과 정상까지 필요한 모든 짐을 우리가 가져가야한다. 배낭무게가 상당하다 고도도 1,000m정도를 올려야 하므로 고소가 올 것이다. 점심때 행동식을 먹었는데 눈이 날린다. 여름인데…. 제법 추워지더니 바람도 세차진다. 3시를 넘으니 힘이 부친다. 터덜터덜 기진맥진해서 올라왔다. 다들 힘든 표정이 역력하지만 누구하나 티를 내는 대원이 없다.
텐트를 치고 정리하는데 여자 대원 한명의 상태가 좋지 않다. 죽, 포카리스웨트, 청심환, 소화제까지 죄다 토해낸다. 1시간이 지나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고 구토증세가 심하다. 고소뇌부종 초기 증세일까 애가 탄다. 의식이 또렷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저녁 9시경 결국 하산을 결정했다. 더 늦어지면 하산도 힘들어진다. 두 명의 대원이 내려갔다 오기로 했다. 마음이 착잡해진다. 내가 부족해서인듯하다. 무전기를 앞에 두고 무거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5일. 새벽 4시 20분 고산 탓에 잠을 못잔 탓도 있지만 올라올 두 명의 대원 걱정에 잠을 설쳐서인지 머리가 띵하다. 어제 밤 12시 무사히 여자대원이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는 무전을 받고, 올라올 두 명의 대원을 기다리면서 비빔밥을 먹는다. 입맛이 없다.
캠프1을 출발하여 너덜지대를 한시간 정도 오르니 30m짜리 설벽을 만났다. 크램폰을 착용하고 가이드가 설치한 픽스로프에 내가 첫 번째로 쥬마링으로 오른다. 크램폰이 잘 박힌다. 고소 탓에 큰숨과 가쁜 숨을 몰아쉰다.
전 대원이 설벽을 올라서자 눈발이 거세진다. 날씨는 잔뜩 찌푸리고 가스가 찬다. 뒤에 오는 두 대원을 기다려야 한다. 가만히 있으려니 졸음과 추위가 몰려온다.
한시간 정도 기다리니 두 개의 헤드렌턴 불빛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잠 한숨도 못자고 다녀온 두 명의 대원이 참으로 대견하다. 이제 가는 일만 남았다. 대설원이 눈앞에 있다. 크레바스를 조심해서 몇 군데 건너간다.
추운 고산에서 가스가 걷히기를 또다시 기다린다. 설사면을 지나 두 번째 설벽이 가로 막는다. 40m 되어 보인다. 8㎜ p.p로프에 쥬마링을…. 엄청 힘들다. 날씨는 아직도 눈발이 그렁그렁…. 지독한 등반날씨다.
12시가 넘어 점심. 고개 숙인 채 행동식을 먹는다. 그래도 못가겠다는 대원은 없다. 설면에 붙는다. 화이트아웃 때문에 시야가 10m다.
설사면의 경사가 60° 고정로프를 200m 설치하고 주마로 확보한 후 오르기 시작한다. 정상이 보일 듯 말듯한데 날씨 때문에 답답하다. 고정로프 끝자락은 이중피셔맨즈매듭으로 되어 있어서 쥬마(등강기)를 옮길 때 매우 주의해야 한다.
대원들 모두 훈련받은 대로 고산 설사면에서도 잘하고 있다. 등반의 묘미는 어려움이 아닌가. 칼날능선에 픽스로프에 확보하여 기다리니 화이트아웃이 걷히고 정산이 보인다. 이런 세상에나…. 대설원 위에 정상이 있다.
13시4분 전 대원이 칼날능선을 지나 정상에 발을 올린다. 100일간의 훈련이 빛을 보는 순간이다. 커니스를 피하며 정산등정의 기쁨을 누린다. 눈부신 아름다움이란…. 그 기쁨이란…. 대원들과 정상에 서자며 굳게 한 약속. 고산병과 싸우며 애써 몸을 사리지 않은 대원들. 베이스켐프에 있는 단장님과 여자대원. 감격에 눈앞이 아른거린다.
오지탐사대 역사상 이토록 많은 대원이 성공한 경우가 얼마나 있을런지…. 실감나는 정상사진을 마음껏 찍었다. 모두들 탈진상태지만 그래도 서로의 어깨를 잡아줄 힘은 있다. 기특한 녀석들.
마지막 하강을 마치고 18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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