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 생활하다보면 고향을 잊는 수가 많다. 그렇다지만 낯선 곳에 가 있더라도 선뜻 고향을 떠올리는 수가 많다. 산수山水를 고향과 비교하는 수가 많다. 고향이 가까이 있다면 그 쪽 하늘을 쳐다 보면서 ‘지척이 내 고향이련만 여기에서 얼마가 더 가면 고향일까’를 떠올리는 수가 많다. 수구지심首邱之心이 많은 애향심의 발로다. 땅에 떨어진 꽃은 빈산에 가득 차 있건만, 여기에서 내 고향을 가는 길은 어디쯤에 있을까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思鄕(사향) / 해거재 홍현주
나그네의 꿈속에는 새소리가 들리고
고향의 생각들이 나무마다 엉키는데
고향 길 어디쯤일까 꽃들이 떨어지니.
旅夢啼鳥喚    歸思繞春樹
여몽제조환      귀사요춘수
落花滿空山    何處故鄕路
낙화만공산      하처고향로

여기에서 내 고향을 가는 길은 어디쯤 있을까(思鄕)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해거재(海居齋) 홍현주(洪顯周:1793∼1865)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나그네 꿈속에서는 오직 새소리만이 들리고 / 고향 생각이 나서 마냥 봄나무에 엉키어 있다네 // 땅에 떨어진 꽃은 빈산에 가득 차 있건만 / 여기에서 내 고향을 가는 길은 어디쯤에 있을까]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고향을 생각하면서]로 번역된다. 수구초심首丘初心, 호사수구狐死首丘, 수구지심首丘之心이란 성어가 있다. 짐승도 죽을 때가 되면 자기가 태어나 자랐던 굴이 있는 언덕(丘)으로 머리(首)를 돌려 죽는다는 말이다. 하물며 사람이 살았을 때에서랴. 사람은 이런 마음이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늘 고향을 그리면서 살아간다.

시인은 꿈속에서도 고향 길을 깊이 생각하기도 했다. 고향에서 놀던 생각도 깊이 하게 되었고, 움트며 자라고 있는 봄나무에도 고향 생각에 얽히었던 지난날을 생각했을 시상을 일으켰다. 나그네 꿈속에는 새소리가 처량하게 들리고 고향 생각들이 봄 나무에 엉키어 있다고 했다. 고향에 가고픈 간절한 선경의 심회와 그림 한 폭을 갈무리해 내고 있다.

화자는 고향 산에 꽃이 가득 차서 길을 막고 있는데 진정으로 고향 가는 길이 어디인지를 되묻고 있는 후정後情의 시상이다. 그래서 떨어진 꽃은 빈산에 가득 찼는데 내 고향 가는 길은 어디쯤이냐고 묻는다. 떨어진 꽃은 아무렴 해도 화자가 고향의 깊은 사념에 묻혀버린 시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나그네 꿈 새소리만 고향생각 봄나무에 떨어진 꽃 빈 산 가득 고향길은 어디쯤에’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해거재(海居齋) 홍현주(洪顯周:1793∼1865)로 조선 후기의 부마이다. 다른 호는 약헌(約軒) 등으로도 쓰였다. 아버지는 홍인모이며, 우의정 홍석주의 아우이다. 정조의 사위인 바 정조의 둘째딸 숙선옹주와 혼인하여 영명위에 봉해졌다. 특히 시문에 능하여 남겨진 상당수의 시가 전한다.

【한자와 어구】
旅夢: 나그네 꿈. 먼 지방에 나그네로 가서 꾸는 꿈. 啼鳥: 새가 지저귀는 소리. 喚: 부르다. 들리다. 歸思: 고향 생각. 繞: 엉키다. 春樹: 봄 나무. // 落花: 떨어진 꽃. 滿: 가득하다. 가득 차다. 空山: 텅 빈산. 아무 것도 없는 산. 何處: 어는 곳. 어디. 故鄕: 고향으로. 路: 가는 길.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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