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오는 3월13일의 선거는 전국동시선거로 우리지역 조합 7개 중 서홍천(남면·서면합병조합)조합이 지난해 합병돼서 이번 선거에서는 빠지고 6개 조합만 선거한다. 농협중앙회 산하 특수조합인 인삼조합과 축협은 포함이 되고 산림조합도 이번 통합선거에 임하게 됐다.

먼저 기고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나라의 조합 발전은 곧 우리나라 금융 역사와 대동소이하다. 구한말 일제가 우리 경제를 좌지우지할 때 1900년경 20여년간을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한일합방이 되고 그 기간 34년 8개월 내내 한국은 일제의 금융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외교권 정치권 금융권이 일제의 손아귀 속에 있었다. 금융조합(은행)도 그때에 태어났다. 농업은행 농협중앙회 다시 농협은행 현재의 구조로 되어 있다. 광복 후 농지개혁이 이뤄지고 소작농이 금지되면서 농지가 헌법의 경자유전의 원칙에 의거 농지대금 분할상환에 행정기관과 손잡고 일을 했고 고리채정리에 적극 개입해 농촌의 자금흐름을 대변혁시켰다.

고리채란 당시 농촌에 자금이 없어 비싼 이자로 융자받았던 것을 탕감하고 원금이나 이자를 아예 면제해주는 특단의 정부시책이 있었던 것이다. 이 거대한 사업을 농협이 맡아서 시행해 성공했다. 비료공급과 정책자금을 위탁받아 사업을 했고 이것을 군지부에서는 다시 단위조합에 이관시켜 추진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많은 애로사항과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홍천읍내의 경우 군내에서 합병(대단위)이 비교적 늦게 이뤄졌다. 1969년경 최초의 합병서류가 정비되고 장부가 개시됐다. 당시 읍내단위조합이라 명칭을 하고 사무실은 현재 본관 터에 군농협 농약창고에서 문을 열었다. 합병조합장은 하오안리의 이동조합장 출신 강수창 조합장이었다. 강수창 조합장은 원래 성씨가 김 씨인데 집안의 사정으로 양자로 입양됐다. 양부모가 다 작고한 후 다시 본래의 성씨인 김 씨로 돌아온 분으로 홍천농협을 키우는데 큰 공로를 세운 최초의 합병조합장이다.

당시 결운리 안원혁 조합장과 검율리 이원희 조합장 삼마치1리 변갑수 조합장 삼마치2리 강대경 조합장님들의 활동이 컸으나 최종 강수창 조합장이 초대 읍내이동조합장에 선출됐다. 처음에는 영농회장(이장이 대부분 겸했음)들이 간접선거로 뽑다가 그 후 조합장 선거위원을 뽑아 그 사람들이 다시 조합장을 뽑는 간간선거였다가 지금의 직접선거로 제도가 개선됐다.

홍천읍 조합은 출발은 군내 여타조합보다 다소 늦게 출발했으나 군지부에서 집중적으로 지원해 상호금융을 비롯한 경제사업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건물은 군지부 비료창고와 농약창고를 장부가격 원가에 매입 후 철거하고 신형 2층 건물로 지었다가 다시 철거하고 현재의 청사를 지었다. 경제사업소(중앙지소) 터는 군농협 양곡창고와 축산관리(우시장과 인공수정사무소) 사무소를 불하받아 현재의 경제사업과 농협종합마트 사무소로 운영 중이다.

1970년대 북방농협에 대형 금융사고(조합의 금고도난)가 발생하고 조합의 경영이 어렵게 되자 읍내조합과 합병을 해서 읍내조합은 홍천단위농업협동조합(홍천농협)이라 개칭했다. 이때 군농협과 이름이 같다 하여 주저했으나 그대로 시행하기로 하고 북방은 지점으로 격하 운영하게 됐다.

그 후 두촌농협이 조합원 감소로 역시 홍천농협과 합병해서 명실공히 대단위 즉 3개 읍면 단위조합으로 재탄생하고 정식명칭도 중앙회의 법 규정에 따라 홍천지역농업협동조합(약칭 홍천지역농협)이라 하게 됐다.

그동안 많은 조합장님들이 거쳐 갔고 다시 3월13일에 새로운 조합장을 뽑게 될 것이다. 이런 단위지역조합이 되기까지 그 업무의 중심에 섰던 필자는 그때를 뒤돌아보니 그저 감개무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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