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오는 3월13일은 전국지역농업협동조합 조합장을 뽑는 동시선거 날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지역농협 조합장 6명(서홍촌농협은 지난해 합병으로 안 뽑음)과 인삼조합 산림조합 축협조합 조합장을 뽑는다.

우리나라의 농업에 관련된 협동조합은 2단계로 되어 있다. 전국 농협을 지도 감독하는 농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중앙회)가 있고 연합체인 지역농업협동조합이 있다. 계통적으로는 같지만 법인은 다르다.

우리나라의 협동조합 역사를 보면 일제 강점기 때 부산의 한 수녀원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후 금융조합이 전국단위로 조직돼 시군단위까지 사무실이 생겼고 주로 서민과 농촌금융을 전담했다. 광복이 된 후 자유당 초기까지 있다가 금융조합이 농업은행으로 탈바꿈했다. 그 후 농업협동조합중앙회가 새로 조직됐으나 그 기능이 자연부락단위 소규모로 시작됐고 전국조직인 만큼 중앙회와 도단위 군단위 등 3단계로 형성됐다.

금융업무를 떼어낸 농협은 속 빈 껍데기 조합이 되고 경제사업 위주로 소규모 사업을 벌였으나 그 기능이 활발치 못했다. 1960년 5월 16일 군사정변으로 농업은행과 합병된 중앙회는 대형기관으로 재탄생됐다. 당시 농협중앙회 산하 전국단위조합(이동조합)은 약 4만여 개에 달했고 우리 군에는 185개의 이동조합(단위조합)이 존재했다. 강원도 내에는 2천여 개의 이동조합이 있었다.

1960년도 농촌 부흥을 위해 단위조합을 활성화시키고자 농촌지원정책자금 취급과 경제사업(비료·농약) 위촉이 됐다. 이동조합 육성을 위해 농협중앙회에서는 개척원이란 제도를 시행해 1개 면 단위로 1명씩 전담 배치해 농협 현대화에 주력했다.

우리 군의 경우 자연부란단위 중심으로 이동조합이 설립됐는데 각 면 단위에 한명씩 배치돼 이동조합을 순회하며 지도했다. 홍천읍의 경우 신장대1·2리 희망1·2·3리 진리 갈마곡1·2리 검율리 결운리 와동1·2리 태학리 연봉리 장전평1·2리 삼마치1·2리 하오안리 등 20여개가 있었다. 주로 하는 업무는 비료공급(배정)이고 구판장 운영이었다. 금융업무로는 자기자금 조성을 위한 절미저축으로 조합원 1통장 갖기운동 전개였다. 구판장에는 고무신과 광목 초등생 학생복 등이었다.

소규모 이동조합 발전의 한계를 느낀 중앙회에서는 이동조합 합병운동을 전개했다. 같은 마을(행정구역 중심)에서도 부진한 이동조합은 인근조합으로의 합병을 유도해 대단위 조합으로 규모를 키웠고 그 후 다시 대단위 조합을 자립조합으로 육성시켰다. 이때까지 조합장(대개 이장이 겸했다) 혼자서 일을 하다가 서기(직원)를 채용해 유급직원을 두게 됐다. 1960년도 말 자립조합을 다시 면단위 조합으로 합병을 유도해 1개면에 1개 조합 원칙으로 재탄생됐다.

그러나 면단위 조합도 문제가 많았다. 면소재지의 단위조합이 오히려 부실하고 소규모 조합(대단위) 경영이 잘돼서 면단위에 합병을 거부하는 실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남면의 경우 남면소재지보다 시동이동조합이 훨씬 경영이 좋아서 본소(남면)를 능가했다. 동면도 역시 좌운이동조합이 속초의 본소보다 일찍 자립을 했다. 내촌도 도관리 본소보다 물걸리(동창) 이동조합이 더 활발했다. 내면도 방내조합이 창촌보다 우수했다. 두촌은 자은이동조합이 일찍부터 대단위 자립조합으로 탄생했고 화촌과 서석 남면은 군지부의 지소가 있는 관계로 사업의 경합이 이뤄져 여타 단위조합보다 다소 늦게 합병 발전을 했다.

그러나 상위조직에서 과감하게 합병(면단위)을 추진하고 군지부지소(서석 풍암, 화촌 성산, 남면) 폐쇄로 급속하게 발전을 이뤘다. 이로서 홍천군내 이동조합은 10개가 되면서 발전의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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