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음력으로 정월초하루 즉 1월1일 설이 한주일 전에 있었다. 대도시에서는 고향을 향해 민족의 대이동 행렬이 이어졌다. 수도권과 대도시에서 직장을 갖고 독립해서 살던 핵가족들이 설을 맞아 각자의 고향으로 내려가는 귀향이 시작된 것이다.

시골에는 부모님 또는 그 가족들이 농촌(시골)을 지키고 살고 있다. 명절은 동양권에서도 일부만 쇤다. 중국은 춘절이라고 해서 설을 쇠고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본이나 베트남은 특별한 설 명절을 쇠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설 명절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유추컨대 삼한시대부터 신라와 삼국시대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 유교의 발전과 성리학의 발전에 이어 곧 명절(설)로 이어졌을 것이다. 즉 새해가 되면서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산 사람은 자손들로부터 대우를 받는 세시풍습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약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가 시작될 무렵 우리는 고유의 설을 쇘으나 광복 전에는 양력 1월1일을 지키라고 해서 구정(음력 1월1일)을 강제적으로 못 쇠게 했었다. 일제로부터 광복이 된 후 음력과 양력 두 개를 겹쳐서 쇠다가 30여 년 전 구정을 정식 설로 정하고 공휴일로 지정했다. 지금도 음력과 양력 중 자유로이 선택해 쇠는 집들도 있다.

문헌에 의하면 조선시대 명문대가에서도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이황(이퇴계) 종가도 차례를 안 지냈다는 얘기가 있으나 확인할 길은 없다. 원래 세시풍습과 미풍양속은 법에 정해진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고유풍습의 하나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커다란 명절은 설과 추석이다. 이 두 명절에는 온 가족이 모이고 아침 차례를 올린 후 대개는 성묘를 간다. 가까운 친척(집안)이 다 모인다. 요즘은 직계 부모는 자기집안에서 모시고 조부나 고조부까지는 장손 집안에서 모시기 때문에 장손집 며느리들은 알게 모르게 명절증후군을 겪게 된다.

아무리 제물을 간단히 차린다고 해도 기본 제상이 있기에 늘 고생하게 된다. 필자의 경우도 외며느리 혼자 명절제물을 차린다. 가능한 간소하게 마련하라고 해도 그게 아닌가 보다. 혼자서 제물 차리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나 어찌 할 수가 없어 고뇌 중이다.

내 지인들의 경우도 명절 차례를 아예 생략하고 가족들과 성묘로 대신한다고 한다. 또 개신교에서는 차례를 안 지내고 가족이 모여서 기도로 끝낸다고 한다. 이럴 경우 제물은 없고 평상시 음식으로 대한다고 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찌 보면 다 맞는 것 같다. 조상을 위한다(모신다)는 것은 사실 산 사람을 위하는 것이다. 내가 곧 아버지고 아들이고 손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2대 명절은 공휴일이 보통 1주일 정도다. 거기다 징검다리 휴일이 끼면 대체공휴일로 보통 한주일은 공휴일이 된다. 차례나 귀향이 없는 독립가족들은 해외나 국내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설 차례상에는 만두떡국을 놓고 가을 추석에는 햅쌀 뫼를 올린다. 설에는 왜 떡만둣국을 놓는지 그 역사적 의미는 없다. 나름대로 이유를 대는 자들도 있지만 꼭 그것이 맞는 것은 아니다. 추석은 좀 다르다. 햇곡(쌀)을 부모님(조상)께 올린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제물들은 경우에 따라서 조촐하게 바르게 준비해 지내면 된다.

제물의 간소화란 말은 원래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원래 제물의 수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정갈하고 마음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제물이 우리 조상들께는 최대의 제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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