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2-118]

청백리의 규정은 아무리 해도 애매하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재산을 탐내지 않는 관리라고만 알고 있다. 어디까지가 청백리라고 해야 할 지 분명한 선을 긋기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몸으로 부딪치며 그림을 그렸던 대화가가 호소하는 청백리에 대한 규정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호소력을 지니게 된다. 맑은 바람이나 밝은 달 즐기니 돈 쓸데가 없고, 대울타리 띠 집도 흡족하니 돈 없다 책할 일 없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淸白吏(청백리) / 겸재 정선
바람과 달 즐기니 돈 쓸데가 없어지고
대울타리 족하니 돈 없다 할 일 없어
독서에 청렴결백하니 돈 필요가 없다 하네.
淸風明月不用錢    竹籬茅屋不責錢
청풍명월불용전       죽리모옥불책전
讀書論道不求錢    潔己愛民不要錢
독서논도불구전       결기애민불요전

청렴결백해 백성 사랑하며 사니 돈이 필요없네(淸白吏)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맑은 바람 밝은 달 즐기니 돈 쓸데없고 / 대울타리 띠 집도 흡족하니 돈 없어서 책할 일 없네 // 글 읽고 도 논하면서 사니 돈 구할 일 없고 / 청렴결백해 백성 사랑하며 사니 돈이 필요 없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청백리가 따로 있나]로 번역된다. 청백리에게 붙여진 칭호는 대단히 자랑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청백리 황희, 남구만, 이황, 이항복 등을 제일의 반열에 놓는 청백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청백리는 자기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돈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었던 청렴결백한 인물이다. 그들은 띠풀집도 흡족하게 생각했고, 돈을 구하지도 않았고, 백성만을 사랑하니 돈도 필요 없다는 시상을 이끌어냈다.

시인은 청백리의 누구라는 지칭보다는 일반적인 성향을 담아서 에둘러 이야기하고 있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즐기니 돈 쓸데가 없고 대울타리와 띠 집도 흡족하니 돈이 필요 없어 책망할 일이 없다 했다. 조선의 청백리 자신은 거의 이렇게 생활을 했고, 이런 사고방식으로 나라의 녹을 먹고 봉직했을 것은 자명하다 하겠다.

화자는 다시 청백리가 되는 사람이나 청백리를 책정한 인물에 대한 정의와 논의를 하고 있다. 청백리는 글을 읽고 도를 논하면서 살아가니 돈 구할 일이 없고 그들은 오직 청렴결백하면서 백성 사랑하며 살아가니 돈이 필요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재천명하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달 즐기니 돈 쓸데없고 돈 없어도 책을 읽네, 돈 없어도 도 논하고 백성 사랑 불필요한 돈’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으로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다른 호는 겸초(兼艸), 난곡(蘭谷) 등을 썼다. 그림은 중국 남화에서 출발하였으나 30세를 전후해 조선 산수화의 독자적 특징을 살린 사생의 진경화로 전환하였으며 여행을 즐겨 전국의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한다.

【한자와 어구】
淸風: 맑은 바람. 明月: 밝은 달. 不用錢: 돈 쓸 곳이 없다. 竹籬: 대울타리. 茅屋: 띠 집. 不責錢: 돈이 없다 책망하지 말라. // 讀書: 글을 읽다. 論道: 도를 논하다. 不求錢: 돈을 구하지 않다. 潔己: 자기 몸이 결백하다. 愛民: 백성을 사랑하다. 不要錢: 돈을 요구하지도 않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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