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2-117]

철이 바뀌면서 남과 북을 오가는 새를 [철새]라고 한다. 철새에 비해 남북을 오가지 못하고 한 지방에서 사는 새를 흔히 [텃새]라고 한다. 종다리·섬참새·참새·까치 등이겠다. 그런데 봄 기러기가 고향을 찾지 못하고 모래톱에서 서성이는 모습이 몹시 안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안쓰럽다기 보다는 얄미웠을 지도 모른다. 봄추위임에도 연못가의 기러기가 돌아가지 못하고, 모래톱에 홀로 서서 털옷만을 가다듬고 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沙汀春雁(사정춘안) / 수암 권상하
봄추위에 못 돌아가 털옷을 다듬고
사람을 만나면서 고향 소식 전할런지
기러기 소리치면서 낚시터로 날으네.
澤國春寒雁未歸    沙汀獨立整毛衣
택국춘한안미귀    사정독립정모의
逢人似欲傳鄕信    故故飛來近釣磯
봉인사욕전향신    고고비래근조기

사람을 만난다면 고향의 소식 전하려는 뜻인데(沙汀春雁)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1641~1721)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봄추위에 못 가의 기러기 돌아가지 못하고 / 모래톱에 홀로 서서 털옷을 가다듬고 있네 // 사람을 만난다면 고향의 소식 전하려는 뜻인데 / 끼룩끼룩 소리치며 날아 낚시터로 다가가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모래톱엔 봄 기러기가 노네]로 번역된다. 기러기는 겨울새로 겨울이 되면 우리나라를 찾아왔다가 봄이 되면 그들의 서식지인 시베리아로 날아간다. 추운 지방을 찾아 나선 철새다. 봄이 되기 전에 북쪽으로 날아가야 할 기러기가 날아가지 않고 모래톱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미련이 더 남아있는 모양이다. 먹을 것이 더 있다든지. 서식지가 좋다든지 무언가 이유가 있지만 시인은 다소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시인은 떠났어야 할 기러기가 떠나지 못하고 봄추위를 맞고 있는 모습이 이상했던 모양이다. 봄추위에 못 가의 기러기 아직도 제 놀이터를 찾아 돌아가지 못하고 모래톱에 홀로 서서 털옷을 가다듬고 있다고 했다. 털옷을 바꿔 입기가 대단히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니다. 털옷을 서로 바꿔 입을만한 시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화자는 기러기와 한바탕 대화를 나눌 양이었던 것 같다. ‘기럭아’를 다정하게 부르더니만 사람을 만나니 고향의 소식 전하려는 뜻으로 ‘끼룩끼룩’ 소리를 치며 날아서 낚시터로 다가간다는 시상이다. 낚시터에서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라도 찾을 모양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기러기 돌아가지 않고 홀로 털옷 가다듬네, 고향 소식 전하려고 낚시터로 다가가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1641~1721)로 조선 후기의 학자이다. 다른 호는 한수재(寒水齋)를 썼다. 이이, 송시열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정통 계승자이며 인물성 동이논쟁인 호락논변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던 인물이다. 송준길, 송시열의 문인으로 알려지며,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한자와 어구】
澤國: 연못가. 春寒: 봄추위. 雁未歸: 기러기가 돌아가지 못하다. 沙汀: 모래톱. 獨立: 홀로. 整毛衣: 털 옷을 가다듬는다. 매만지다. // 逢人: 사람을 만나다. 似欲: 하고자 하다. 傳: 전하다. 鄕信: 고향의 소식. 故故: 끼룩끼룩. 飛來: 날아오다. 혹은 날아간다. 近: 근처. 釣磯: 낚시터.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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