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2-105]

명절이 돌아오면 근친覲親하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이는 아름다운 우리들의 풍습이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던 모양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는다면 산소山所라도 찾아뵙는다. 이런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새해를 맞이하여 고향을 찾지 못하고 그리움을 담아 아우 집에서는 독서함에 등불이 꺼져가고 있겠는데, 서산마루엔 새벽달이 초가집 앞에 기울리라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正朝寄舍弟(정조기사제) / 제호 양경
세월은 흘러서 또다시 새해 되고
늙어서 떠나니 더욱더 가련한데
독서에 등불 꺼지고 새벽달을 기울이네.
天時苒荏又新年    到老離居益可憐
천시염임우신년    도노이거익가련
想得讀書燈欲盡    西峰殘月草堂前
상득독서등욕진    서봉잔월초당전

서산마루엔 새벽달이 초가집 앞에 기울리라(正朝寄舍弟)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제호(霽湖) 양경우(梁慶遇:1568~?)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세월은 무심히 흐르고 흘러 또 새해가 되었으니 / 늙어서 고향을 떠나 사니 더욱 가련하구나 // 아우 집에서는 독서함에 등불이 꺼져가고 있겠는데 / 서산마루엔 새벽달이 초가집 앞에 기울리라]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설날 아침을 기해 집 아우에게 부치다]로 번역된다. 교통이 발달한 요즈음과 비교하면 선현들의 생활은 비참한 생활이었다. 한양에서 출발하여 전라도나 경상도 어디까지 가기엔 몇 달이 걸렸다. 승용차로 태백 준령만 넘으면 동해의 장관을 보는 강원도를 가는데도 마찬가지다. 공무에 바빠 명절을 기해 고향을 찾아 근친하는 일은 손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서 시인은 근친覲親하지 못하고 인편을 통해 안부를 물으면서 사제師弟에게 안부를 전한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또 새해가 되었으나 몸이 늙어 고향을 떠났으니 내 신세가 더욱 가련하다는 시상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고향은 그리운 곳이다.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에 고향 찾는 일은 추억이 어려 있는 곳이기에 더없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화자는 고향집에서 생활하고 있을 아우에 대한 그리움과 이 편지를 받을 그 때를 생각해 보는 전환법을 썼다. 아우는 고향집에서 독서를 다 마친 후에 등불이 꺼져가고 있을 것이며, 등불이 꺼져가는 그 시기는 서산마루에 새벽달이 초가집 앞에 기울 것이라는 전환법들이 그것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세월 흘러 새해 되고 나이드니 가련하구나, 늦게까지 독서한 아우 새벽달 기울리라’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제호(霽湖) 양경우(梁慶遇:1568~?)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이었다. 임진왜란 때 전사한 아버지의 시신을 전주로 옮겨 청계동으로 돌아가 장사지내고, 1595년(선조 28) 격문을 돌려 군량 7천 석을 모으는 공을 세워 조정에서 참봉에 제수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종사관을 지냈다.

【한자와 어구】
天時: 하늘의 때. 곧 세월. 苒荏: (세월이) 흐르다. 又: 또. 新年: 새해. 到老: 늙어서. 離居: 떠나서 살다. 益可憐: 더욱 가련하구나. 자기의 처지를 한탄함. // 想: 생각건대. 得讀書: 독서를 하다. 燈: 등불. 欲盡: 다하고자 하다. 西峰: 서산마루. 殘月: 새벽달. 草堂: 초가집. 前: 앞.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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