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아침 오전 6시 조금 넘어서 새우젓을 사려고 재래시장(구시장)에 갔다. 새우젓을 파는 식료품 가게에서 여주인에게 새우젓을 주문했다. 주인은 “얼마치나 드려요?” 한다. 값을 전혀 모르는 필자는 새우젓 그릇에 있는(담아주는 그릇) “저만큼이면 돼요” 하고 돈을 지불하려 했다.

허나 낭패였다. 돈을 안 가지고 온 것이다. 분명히 지갑을 꺼내 주머니에 넣은 것 같은데 없는 것이다. 당황한 필자는 엉겁결에 “어휴 지갑(돈)을 안 가져왔네요. 조금 있다 제가 다시 올게요” 하고 돌아서려는데 주인이 “우선 그냥 가져가세요. 괜찮아요” 한다. 나는 계면쩍은 마음을 억누르며 “얼마지요?” 하고 주인의 태도를 슬쩍 봤다. 주인은 웃음을 가득 채운 얼굴로 “그럴 수도 있지요, 뭐” 하며 재차 “그냥 가져가세요” 하며 오히려 요구르트 음료와 새우젓을 싸준다. “아침인데 마수걸이를 외상으로 해서 미안해요. 곧 가져올게요” 하고 필자는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아 10분쯤 지나 다시 점포를 찾았다.

여주인은 점포 정리에 정신이 없었다. 필자는 “사장님, 여기 새우젓 값 가져왔어요” 하며 만원을 내밀었다. 점포 여주인은 “새우젓 값 안 받는다고 했는데 왜 가져왔어요. 그냥 가세요” 한다. 필자는 또 당황했다. 분명히 얼마라고 한 것 같은데 새우젓 값이 무료라니 나는 재차 물었다. “아니 그럼 안 되지요. 잠시 외상 줬던 것도 고마운데 값을 안 받다니요?” 주인은 “조금인데요 뭐” 한다. 필자는 속으로 ‘고마운 분도 있구나.’ 대개는 새벽 첫 손님이 외상을 하면 그날은 재수가 없어 장사가 잘 안 된다고 하는데 오히려 음료수까지 주며 더 친절을 베푸니 말이다.

필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맛있어 보이는 겉절이 배추김치가 있어(사실 집에도 있는데) 값을 물었더니 5천 원이라고 한다. 배추김치 값을 지불하고 아무래도 찜찜해서 “사장님이 뭐 착각한 것 같은데요, 새우젓 값 정말 그냥가도 돼요?” “아무럼요, 그냥 가시고 다음에 더 많이 팔아 달랬잖아요.” 필자는 얼른 지갑에서 천원 지폐를 꺼내 주인에게 주며 “그래도 그렇지 않아요. 얼른 받으세요” 했다. 하지만 주인은 안 받겠다고 손사래를 친다. 필자는 천 원짜리 한 장을 점포에 놓고 왔다.

돌아오는 새벽길이 왜 이렇게 기분이 상쾌한지. 우리의 인심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물건 값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새우젓 값만은 정말 몰랐다. 한 사발에 만 원쯤 하는 걸로 알았고 미리 짐작컨대 훨씬 아래의 시세 같다.

새우젓과 필자는 아주 오랜 관계가 있고 그 관계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6.25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2년도와 53년도 휴전이 될 때쯤 우리나라에는 전염병인 장질부사(옘병)가 크게 유행했다. 열병의 하나인 장질부사는 감기 비슷하나 먹지 못하고 열이 나고 설사를 하다가 심하면 죽는 병이다. 항간에는 중공군이 퍼트렸느니 세균전을 했느니 했지만 그 사실관계는 덮어두고 그 병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버지로부터 두 누나와 필자 4식구가 앓고 밥을 못 먹는데 동네 이웃집에서 우리 집에 새우젓을 줬다. 어머니께서 새우젓에 호박을 썰어 넣고 호박찌개를 해주셨다. 필자와 누나들도 그랬지만 아버지는 그 새우젓호박찌개를 드시고 기운을 차린 후 가장으로서의 새 삶을 찾았다. 그 후부터 우리 집의 전통요리는 호박찌개고 그 비법이 며느리한테까지 이어져 신식 며느리가 요즘 곧잘 새우젓호박요리를 해서 필자의 여름 입맛을 돋우고 있다.

어찌 보면 하찮은 작은 일이 우리들의 삶을 멋지게 한다. 새벽시장 식료품 점포의 여주인이 베푼 인정이 필자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고 우리들의 이웃 간 인정이 아직은 사라지지 않았음을 새롭게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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