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2-87]

무릉은 한나라 고조 때 설치했던 군명으로 중국 호남성 남쪽에 있는 경계 좋은 곳이다. 시인이 보았던 무릉은 그런 차원을 벗어나 우리 풍속에 맞는 무릉을 찾아내려고 했던 흔적을 시문 속에서 찾는다. 우리 자연은 온통 신비스럽고 우리 주위에 있는 기암괴석은 중국의 그것을 초월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리 이쪽저쪽에 물어 볼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잎이 다 진 나무와 차갑게 흐르는 골짜기마다 모두 그러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武陵溪(무릉계) / 고죽 최경창
거칠고 위험한 돌길을 지났더니
흰 구름 덮인 천년 자취인 듯한데
다리에 사람은 없고 골짝마다 그러하네.
危石纔交一徑通 白雲千古秘仙蹤
위석재교일경통 백운천고비선종
橋南橋北無人問 落木寒流萬壑同
교남교북무인문 낙목한류만학동

흰 구름 덮인 천년의 신선 자취인 듯하더이다(武陵溪)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이다. 작가는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1539~1583)으로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거칠고 위험한 돌길을 지나가다가 / 흰 구름 덮인 천년의 신선 자취인 듯하더이다 // 다리 이쪽저쪽에 물어 볼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 잎이 다 진 나무와 차갑게 흐르는 골짜기마다 그러했다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무릉계를 지나면서]로 번역된다. 무릉계는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오대산 소금강 계곡의 하나로 구룡폭포로 이어지는 계곡이다. 산수가 청정하고 계곡이 아름다워 예나 이제나 많은 사람들이 산이 좋고, 물이 좋고, 공기가 좋아 즐겨 찾는 계곡이다. 시인도 신선의 자취가 남아 있다는 생각으로 이곳을 찾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풍광을 한 숨으로 머금으면서 신선한 공기에 취했을 것이다.

시인은 거친 돌길을 몸을 비비 틀면서 한참을 걸어가면서 선경先景 자연에 취해 시상을 일으키고 있다. 거칠고 위험한 돌길을 한참 동안 지났더니 흰 구름이 덮인 천년의 신선 자취인 듯 맑고 고왔다는 시상을 이끌어냈다. 꼭 구룡폭포를 찾아가려는 심사는 아니었을 것이지만 무릉계 자체만의 경지는 신선들이 놀았다는 깊은 뜻을 방불케 했을 것이다.

시인의 말을 빌은 화자는 계곡을 찾는 동안 누구도 만나지 않고 혈혈단신으로 풍광의 자태에 몸을 의탁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리 이쪽저쪽에 길을 물어 볼 사람도 없고, 오직 잎이 다 지고 난 나무와 차갑게 흐르는 골짜기마다 그저 그렇기만 했다는 술회 한줌을 쏟아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위험한 돌길을 지나 천년 신선 자취인 듯, 물어볼 사람 없는데 골짝마다 낙목한류’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1539∼1583)으로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약관이 안 되어 문장에도 뛰어나 이이, 이율곡, 송익필, 최립 등 재주 있는 사람들과 같이 무이동에서 시를 주고받으며 팔문장의 하나로 일컬어졌다. 이달, 백광훈과 더불어 삼당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한자와 어구】
危石: 위험한 돌. 纔交: 겨우 지나다. 一徑通: 한 지름길을 통해서. 白雲: 흰 구름. 千古: 천년. 秘仙蹤: 신선의 자취를 감추다. // 橋南: 다리의 남쪽. 橋北: 다리의 북쪽. 無人問: 물어볼 사람이 없다. 落木: 잎이 떨어진 나무. 寒流: 차갑게 흐르다. 萬壑同: 모든 골짜기마다 한가지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저작권자 © 홍천뉴스 / 홍천신문 홍천지역대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