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이달은 졸업시즌이다. 초등학교는 6년을 다닌 학교를 떠나고 중고교는 3년씩의 정든 학교를 떠난다. 졸업식장 광경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50~60년대의 졸업식은 대개 강당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했다. 식순 내용도 맨 먼저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있고 축사 등등이 있고 각종 상장과 졸업장 등의 수여가 있었으며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송사와 답사 그리고 졸업식 노래다.

송사는 졸업생 대표가 선생님과 재학생들에게 주는 글이고 답사는 재학생들이 졸업생에게 주는 글이다. 내용이 구구절절 가슴을 메우는 글귀들이다. 그리고 졸업식 노래는 1절은 재학생이 졸업생에게 바치는 구절이고 2절은 졸업생이 재학생에게 주는 내용이며 3절은 선생님과 재학생 졸업생 모두에 관한 내용이다.

대략 이런 내용들로 1절은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이고 2절은 “잘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떠나갑니다…” 3절은 “냇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듯 우리들도 다시 만나자”라는 내용들로 꾸며져 있다. 요즘엔 이런 노래 이런 졸업식이 촌스럽다고 안 한다.

옛 것이라고 해서 다 촌스럽고 구태의연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신문명 백여 년 역사에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 그 위 할아버지까지 해온 졸업이다. 지금은 옛 추억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기계문명이 급속도로 발전되고 진공관 시계와 트랜지스터 시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인터넷과 정보화)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은 그저 과거는 제쳐두고 현재와 미래만을 위해 바쁘게 뛰고들 있다.

학교생활에서 공부를 제일 잘한 자 몇 명에게는 우등상을 주고 결석을 한 번도 안 하고 학교에 나온 자에게는 개근상을 줬다. 사정에 의해 몇 번 빠진 자에게는 정근상을 줘 축하했다. 그 당시에는 졸업생도 많아서 웬만큼 큰 강당이 아니면 졸업생과 재학생(당시에는 전교생이 참여했음)이 동시에 들어가지 못해 학교 운동장에서 졸업식을 거행했다.

졸업식이 끝나면 요즘이나 그때나 학부형들이 찾아와 자녀들의 졸업을 축하해줬다. 필자의 경우 초중고교를 어렵게 다니고 부모님이 일이 바빠 졸업식에는 아예 12년간 한 번도 참석 못 하셨다. 그래도 서운한 것도 모르고 학교생활을 끝냈다.

필자의 자녀들은 초중고교 대학까지 부모가 모두 참석해 그들의 졸업을 축하해줬다. 큰 딸은 고등학교 졸업식 날 대학입학 관계로 사진도 못 찍고 식이 끝남과 동시에 서울로 갔고 그 후 막내딸과 아들은 상급학교 진학과 졸업식이 겹치지 않아 끝까지 동석을 했었다. 졸업은 추억이다.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간에 교육이 있는 한 입학과 졸업은 영원히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방법과 형식에 있어서만은 변화가 올 것이다.

필자는 시골에서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를 졸업한지 64년이 됐고 중학교는 61년 고등학교는 58년이 됐다. 돌이켜보면 참 많은 세월이 흘렀다. 64년 전 초등학교 때 배우던 교과서와 노트 각종상장 졸업장 등 60여점을 10여 년 전까지 보관하고 있다가 2007년도에 국가기록원에 기증해 영구보존토록 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것 같다.

그 당시 일부 교과서와 방학책 등은 홍천초등학교 100주년 기념관에 역시 영구기증해서 지금도 전시 중이다. 현재 보관 중인 중고교 교과서 노트 등 교재물도 홍천종합박물관이 설립 개관된다면 기증할 예정이다. 한국인의 습성은 본인이 필요 없으면 모두 버리고 만다. 기관에서는 용도폐기(보전년도 경과)에 솔선하고 개인은 기록물(교과서나 교재)들을 구질구질하게 왜 모아두느냐며 버리기에 바쁘다.

한 개인의 학교생활을 마감하는 졸업식과 그 개인의 성장에 뿌듯함을 안겨줬던 학교시절의 상장들(우등상 개근상 정근상장)이 혹시라도 농짝이나 서재 깊숙이 있는지 찾아보고 옛 추억에 잠겨보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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