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며칠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대학입시가 시작됐다.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자녀와 같이 고생한 한 해다. 초등학교와 중고교 12년 동안 배운 것을 하루에 그 결과를 보는 수능도 지난달에 끝났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대학을 가기위한 첫 관문인 셈이다. 자식 없는 사람이야 별 관심이 없겠지만 지인이나 친인척 중에라도 수능고시생이 있었다면 그래도 조금은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자식은 과연 무엇인가. 옛말에 자식을 말하되 애물단지라고 까지 말하고 우리의 선조들은 자식이 없으면 대가 끊긴다고 문중의 대를 이을 자식(그것도 아들)을 꼭 두어야만 조상에 대한 도리라고 해서 매우 중히 여겼다. 여자가 한 가문에 시집을 와서 아들을 못 낳으면 칠거지악이라고 해서 심지어 쫓겨나기까지 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세상이 바뀌어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이 됐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딸 둘이면 금메달이고 아들딸 둘이면 은메달이요 아들만 둘이면 목(나무)메달이라고 한다. 딸을 더 중요시 여기는 세상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딸 둘이면 세계여행 가서 해외에서 죽고 아들딸 둘이면 국내여행하다 죽고 아들만 둘이면 길바닥에서 죽는다는 끔찍한 유머가 있다.

또한 부모입장에서 보면 자녀에게 잘 해주고 싶은 심정은 누구다 다 가지고 있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이 또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자식이 많이 배우고 훌륭하면 그 집안의 조상 산소는 대개가 흉물이 되든가 아니면 잡초가 무성한 자연수목장 아닌 천연자연수목장이 된 것을 가끔 산에 갈 때마다 볼 수 있는 현실이다.

자식이 잘 돼서 외국으로 이민 가 그곳의 이민권자나 영주권자가 되어 벌초 때도 안 찾아오고 산소도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국내에 산다고 해도 대도시에서 사업이나 공직에 있다 보면 시골의 묘를 돌보지 않는 문중(집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유교문화를 중시했던 우리민족 600여 년 간의 전통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리라 보는 사람은 없다. 사회적 현 실정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다. 이는 비록 우리만의 변화가 아니고 세계적으로 문화와 문명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전래되기 때문이다.

조선조 5백여 년과 근대 1백여 년 간의 변천이 최근 십수 년 사이에 너무나 많이 변했다. 그 중에서도 한 가정에 있어 장자 이외에게도 재산을 물려준다는 제도는 이미 민법에도 정해져 있고 현실도 그에 따르고 있지만 사회통념상 또는 관습법대로라면 많은 집안의 장손이 조금 더 많은 재산을 물려받고 부모의 제사 등을 맡는다.

하지만 지금은 차손이나 무손 또는 신앙적 이념 등으로 제사를 안 모시는 집도 상당수 있으나 이를 가타부타 말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제 조상 제가 모시든 말든 그의 가문에 따른 것이지 타인이 무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 필자의 세대가 지나가면 세상사는 더욱 크게 변하리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보다 선진국들의 예를 가늠해보면 알 수 있다.

자식은 없어도 탈이고 있어도 탈이다. 다시 말하면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다. 없으면 허전하고 무언가 삶의 기준이 애매한 것 같고 있으면 애틋하고 삶의 보람과 가치관이 있긴 한데 골칫거리라고 한다. 옛날처럼 자식이 많으면 제 먹을 것 제가 타고난다고 해서 자연 속에서 스스로 강하게 자라서 의젓한 사회의 일원이 되지만 요즘처럼 아들이나 딸 하나인 외동의 시대엔 부모의 책임이 더욱 중요하게 된다.

그 자녀가 성장 후 직장을 잡을 때까지 부모가 볼모로 잡혀있는 격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부모로서의 의무를 철저히 해야 그 자녀가 바르게 성장할 것이다. 무자식이냐 유자식이냐는 앞으로도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회적 문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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