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16】

아무렴 해도 고향은 좋은 것 같다. 보리피리 불던 시절이 그립고 흙냄새 풍기는 고향은 따스한 어머님의 품속 그 자체다. 나그네가 길을 걷다가 컬컬한 목을 축였던 곳이 두레박 샘물이다. 담담한 그 맛이 고향의 진내음이며 따스함이다. 좌우를 둘러봐도 내 놀던 그 터전이 고향이다. 인정은 그 때와 다를 바가 없겠지만 산천은 늘 그랬다. 오직 문 앞에 맑은 돌샘물이 있어 예와 다름없이 옛날의 달고 시원함을 바꾸지 않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初歸故園(초귀고원) / 최유청
마을에는 쓸쓸한데 담장은 무너지고
오직 하나 문 앞에 돌샘물이 있어서
샘물의 시원한 맛은 바꾸지를 않았네.
里閭蕭索人多換 牆屋傾頹草半荒
리려소삭인다환 장옥경퇴초반황
唯有門前石井水 依然不改舊甘량
유유문전석정수 의연불개구감량

 

마을은 쓸쓸하고 사람들은 많이들 바뀌었네(初歸故園)로 번역해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최유청(崔惟淸:1095~1174)으로 고려의 문신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마을은 쓸쓸하고 사람들은 많이 바뀌었고 / 담장은 기울고, 집은 무너지고, 풀은 반이 거칠어졌네 // 오직 문 앞에 맑은 돌샘물이 있어 / 예와 다름없이 옛날의 달고 시원함을 바꾸지 않았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처음으로 고향 정원에 돌아와서]로 번역된다. 오랜 공무생활로 국록을 먹고 살았기에 임금과 백성을 위해 충성을 다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이가 연만해지고, 세상의 단맛과 쓴맛을 다 겪었다면 이제 조용하게 집필에 몰두하고 인생을 정리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아마 시인도 그랬던 모양이다.

시인이 처음 도심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을 찾았을 때 갑작스런 생활의 변화로 선경先景에 대한 시상의 연결성은 대단히 컸을 것이다. 마을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쓸쓸하기만 하고 사람들은 많이 바뀌었네. 담장은 기울고 집은 무너지고 풀은 반이 거칠어졌다고 했다. 전쟁이라도 한 바퀴 지나간 것처럼 초라하기 그지없는 농촌의 전형적인 풍경으로 그려놓았다.

화자의 시상은 전반부에서 모두가 바뀌어진 상황을 그리더니만 후정後情에서는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오직 샘물 맛 하나 밖에 없다는 점을 부각했다. 오직 문 앞에 돌 틈에서 나온 샘물이 있어 예와 다름없이 달고 시원함을 바꾸지 않았다는 동정動靜이란 그림 한 줌의 대비다. 바뀌었던 상황과 바뀌지 않은 상황을 잘 대비해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사람들이 많이 바꿔 무너지고 반은 거칠고, 마을 앞에 돌샘있어 옛날 맛에 시원하고’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최유청(崔惟淸:1095~1174)으로 고려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예종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뒤에 직한림원이 되었으나 인종 초 이자겸의 간계로 한교여가 유배될 때 정극영과 함께 파직되었다. 이자겸이 몰락한 뒤에 좌사간·상주수·시어사를 역임하였다.

【한자와 어구】
里閭: 마을. 蕭索: 쓸쓸하고 삭막하다. 人多換: 사람이 많이 바뀌다. 牆屋傾頹: 담장을 기울고 집은 무너지다(문장이 되었음). 草半荒: 풀의 반쯤은 거칠다. // 唯: 오직. 有: ~있다. 門前: 문 앞에. 石井水: 돌 샘물. 돌에서 나온 샘물. 依然: 그렇게 의지하다. 不改: 바꾸지 않는다. 舊甘?: 옛날의 달고 시원하다. 쉬엄쉬엄 젖다. 待: 기디리다. 看孤月: 외로운 달을 보다. 夜深明: 깊은 밤에 밝다. 밤이 깊으면 달이 밝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저작권자 © 홍천뉴스 / 홍천신문 홍천지역대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