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15】

경포의 밤은 그렇게 무르익어간다. 강릉의 명물이다. 신사임당을 생각하게 하고, 율곡이 컸던 지역임을 생각할 때 경포의 아름다움을 지울 수 없다. 자연이 주는 포근한 선물이 어디 경포에만 한정할 수야 있겠는가마는 우리는 늘 자연에 취해서 살아왔다. 저 멀리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있는 독도가 더는 외로워서 못살겠다고 한다. 사공 늙은이에게 알려 노를 천천히 젓도록 하여 깊은 밤을 기다렸다 돋아오를 달이나 보고 가자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鏡浦泛舟(경포범주)[2] / 근재 안축
자욱한 물결위에 흰 갈매기 지나가고
모래에서 당나귀 느릿느릿 걸어갈 제
늙은이 천천히 노저어 달이나 보고 가세.
烟波白鷗時時過 沙路靑驢緩緩行
연파백구시시과 사로청려완완행
爲報長年休疾棹 待看孤月夜深明
위보장년휴질도 대간고월야심명

 

깊은 밤을 기다렸다 돋아오를 달이나 보고 가세(鏡浦泛舟2)로 제목을 붙여본 율(律)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작자는 근재(謹齋) 안축(安軸:1287~1348)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자욱한 물결 위로 흰 갈매기가 지나가고 / 모랫길에 당나귀가 느릿느릿 걸어가네 // 사공 늙은이에게 알려 노를 천천히 젓도록 하여 / 깊은 밤을 기다렸다 돋아오를 달이나 보고 가세]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경포대에 배 띄우고2]로 번역된다. 경포대에서 배를 띄우는 시인은 심사는 더 깊숙하게 이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구에서 시인이 읊은 시심은 [비 개이자 호수에 가을 기운 가득한데 / 조각배 띄워 놓고 자연정취 만끽하네 // 육지가 별천지에 드니 티끌도 이르지 못하고 / 거울 속을 노니는 듯해 그림을 그리기 어렵네]라고 쏟아냈다. 그림을 그리지 못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안개 자욱한 물결 위로 갈매기가 날아가고 당나귀가 느릿느릿 걸어가는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시인이기 이전에 화폭에 그림을 담는 화가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와 같은 시상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다시 시인의 부탁이 이어지고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노를 저으라고 주문하게 된다.

화자는 이태백이 술을 마시다가 물에 비친 달을 보고 그만 빠져들었다는 시구를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다른 모습은 다 보았으니 내게 기회를 다오.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하는 마음으로 금방 돋아 오를 달을 보고 가자고 칭얼대는 것처럼 그러한 달구경을 요망하게 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물결 위로 흰 갈매기 당나귀는 느릿느릿, 사공 시켜 느릿느릿 돋아나올 달을 보며’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근제(謹齋) 안축(安軸:1282~1348)으로 고려 말의 문신이다. 원나라에서 돌아와 전법, 판도, 군부, 전리 등의 4총랑을 역임하고 우사의대부가 되었다. 1330년(충혜왕 1) 강릉도존무사로 관동지방에 파견되었다. 교지전법사, 전법판서 등 주고 법관직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烟波: 안개 파도. 곧 안개. 白鷗: 갈매기. 時時過: 때때로 지나다. 沙路: 모래길. 靑驢: 푸른 당나귀. 緩緩行: 느릿느릿 다니다. 혹은 지나다. // 爲報: 알리게 하다. 長年: 연장자. 늙은이. 休疾棹: 노를 쉬엄쉬엄 젖다. 待: 기디리다. 看孤月: 외로운 달을 보다. 夜深明: 깊은 밤에 밝다. 밤이 깊으면 달이 밝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저작권자 © 홍천뉴스 / 홍천신문 홍천지역대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