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14】

동해는 간만의 차가 크지 않아 맑고 푸르기만 하다. 억겁의 세월이 간다 해도 자연의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겠다. 우리의 동해 바다에선 해맞이를 한다. 청정해역은 아름다움이란 선물을 한아름 안겨주었다. 갈매기가 날고 고래며 오징어가 마구 손짓을 한다. 바다만 맑고 푸른 것이 아니다. 공기가 맑기론 제일이 경포지역이다. 육지가 별천지에 들어오니 티끌도 이르지 못하고 하늘이 거울 속을 노는 듯하여 그림 그리기 어렵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鏡浦泛舟(경포범주)[1] / 근재 안축

가을 기운 가득한데 조각배 띄어 놓아
육지가 별천지에 티끌도 못 이루고
거울에 놀고 있어서 그리기가 어렵네.
雨晴秋氣滿江城 來泛扁舟放野情
우청추기만강성 래범편주방야정
地入壺中塵不到 天遊鏡裏화難成
지입호중진부도 천유경리화난성

육지가 별천지에 드니 티끌도 이르지 못하고(鏡浦泛舟1)로 제목을 붙여본 율(律)의 전구인 칠언율시다. 작자 근재(謹齋) 안축(安軸:1287~1348)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비 개이자 호수에 가을 기운 가득한데 / 조각배 띄워 놓고 자연정취 만끽하네 // 육지가 별천지에 드니 티끌도 이르지 못하고 / 하늘이 거울 속을 노는 듯하여 그림 그리기 어렵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경포대에 배 띄우고1]로 번역된다. 한 선비가 강릉 경포대를 찾았다. 조각배를 띄어놓고 뱃놀이를 했다. 가을 기운을 마음껏 만끽했으리라. 마치 육지가 별친지에 드는 느낌을 받는다. 자기가 배를 타고 있는 모습이 거울 속에 드는 것 같았다. 아뿔사 이걸 어쩌나. 그림을 그릴 수 없으니. 그러면서 그는 충군애민이 담긴 ‘관동와주’를 쓰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인은 자연과 호흡하는 기운에 만끽되어 있다. 조각배를 띄어놓고 자연의 정취에 취해 있는 모습을 본다. 육지가 별천지임에 푹 빠졌을 것이다. 그리고 감상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겠다.

화자의 눈에 비친 시인의 모습이 거울 속에 노니는 듯 하다는 황홀감에 취하게 된다. 취하는 그 모습을 화폭에 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는 담은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후구로 이어지는 시인의 상상력은 [자욱한 물결 위로 흰 갈매기 지나가고 / 모랫길에 당나귀가 느릿느릿 걸어가네 // 늙은이에게 알려 노를 천천히 젓도록 하여 / 더 기다렸다 돋아오를 달이나 보고가세]라고 했다. 동산 위해 돋아 오르는 달이나 보고 가자고 했으리라.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호수 가을 기운 가득 자연경치 만끽하며, 별천지에 티끌 없고 그림 그리기 어렵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근제(謹齋) 안축(安軸:1282~1348)으로 고려 말의 문신이다. 1320년(충숙왕 7)에 단양부주부로 원나라 제과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하고, 3년 뒤에 다시 응시하여 급제한 뒤 요양로개주판관에 임명되었으나 성균악정으로 승진하여 부임하지 않고 귀국하였다.

【한자와 어구】
雨晴: 비가 개다. 秋氣: 가을 기운. 滿: 가득하다. 江城: 호수. 來泛: (가을기운이) 와서 뜨다. 扁舟: 조각배. 放野情: 들의(가을정치) 정취를 만끽하다. // 地入: 육지가 들다. 壺中: 병 가운데. 곧 별천지. 塵不到: 티끌이 이르지 못하다. 天遊鏡裏: 하늘이 거울 속을 노닐다. ?難成: 그림 그리기가 어렵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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