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13】

우마牛馬라고 했다. 교통의 운반 수단은 말馬뿐만이 아니라 소牛도 큰 몫을 차지했다. 소를 타고 나들이하는 노인장의 모습도 시문에서 종종 만나게 된다. 주인장을 등에 태웠던 소의 심사는 흐뭇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모처럼 나들이 나가는 어르신을 등에 태우는 소는 어깨도 제법 으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참으로 알겠네, 저 물가에도 가까이 인가가 형성된 집이 있는 줄을, 해가 그를 좇아 옆을 흐르는 시냇물에 져간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厭長原亭應製野수騎牛(염장원정응제야수기우) / 곽여

태평스런 모습이 멋대로 소를 타고
그치는 빗물에 반쯤 젖어 밭을 갈고
저 물가 그를 좇아서 시냇물에 해지네.
太平容貌恣騎牛 半濕殘비過壟頭
태평용모자기우 반습잔비과롱두
知有水邊家近在 從他落日傍溪流
지유수변가근재 종타락일방계류

알겠네, 저 물가 가까이에 집이 있는 줄을(厭長原亭應製野?騎牛) 번역해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몽득(夢得) 곽여(郭輿:1059~119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태평스런 모습으로 소를 멋대로 타고 다닌데 / 그쳐가는 비에 반쯤 젖어 밭머리를 지나가네 // 이제야 알겠네, 저 물가 가까이에 집이 있는 줄을 / 해가 그를 좇아 옆을 흐르는 시냇물에 져가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장원정에서 소 탄 노인을 보며 응하여 지음]으로 번역된다. 우마牛馬라 했듯이 말뿐만 아니라 소를 타고 먼 거리를 다녔던 시대가 있었다. 불과 1~200여 년 전만 해도 한양의 거리는 그러한 진풍경이었고, 그런 기록도 이따금씩 보인다. 그래서 소는 짐과 사람을 운반시키는 귀중한 운송수단이었다.

시인은 소를 타고 거리를 활보하는 노인을 심심찮게 보았지만, 응應하여 지은 것을 보아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태평스러운 모습에 소를 멋대로 타고, 그쳐가는 비에 반쯤 젖어 밭머리를 간다고 했다. 시의 내용으로 그려지는 시상의 그림은 비를 맞고 쟁기질을 하면서 소를 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소를 타고 쟁기질 했던 진풍경을 그려보면 다소 웃음이 나온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가 고려 중기였음을 생각할 때 개경의 거리에서 소를 타고 지나는 노인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면 살며시 웃음이 나온다. 화자는 긍정적인 시선을 모아 살며시 자기 합리화를 해버린다. 알겠다고 하면서 저 물가 가까이에 집이 있는 줄 알겠다고 하면서, 해가 노인을 좇아 옆으로 비스듬히 흐르는 시냇물에 진단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태평하게 소를 타고 비에 젖어 밭머리를, 물가에는 집 있으니 해를 좇은 시냇물만’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동산처사(東山處士) 곽여(郭輿:1059~1190)로 고려 전기의 문신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내시부에 속했다가 합문지후를 거쳐 홍주를 다스리고, 예부원외랑이 되었다. 장계초당을 짓고 여가를 즐기다가 곧 관직을 버리고 금주의 초당에 돌아가 은거했다. 학문이 깊고 필법이 뛰어났다.

【한자와 어구】
太平: 태평하다. 容貌: 용모. 모습. 恣: 마음대로. 멋대로. 騎牛: 소를 타다. 소의 등에 타다. 半濕: 반절쯤이나 젖다. 殘?: 그쳐 가는 비. 부슬비. 過: 지나다. 壟: 언덕. 밭이랑. 壟頭: 밭머리. // 知有: 알겠네. 水邊: 물가. 家近在: 집 가까이에 있다. 從他: 그것을 좇다. 落日: 지는 해. 傍溪流: 시냇물 곁에 흐르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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