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08】

시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큰 시상의 족적을 남긴 시인이었지만 헐어진 절터 앞에서는 깊은 회고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유려流麗와 완려婉麗를 특징으로 여기는 시인의 시풍은 만당의 풍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니 어운語韻이 청화淸華하고 구격句格이 매우 호일豪逸한 것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경을 읊은 위로는 북두성을 만질 듯한 삼각지인 절집인데, 정을 읊은 반쯤 허공에 솟은 누각이 한 칸으로 보인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靈鵠寺(영곡사) / 남호 정지상

천 길 바위 꼭대기 천 년을 묵은 절
앞에는 강물 보고 뒤로는 산에 기대
절집에 솟은 누각은 한 칸이나 되는구나.
千刃岩頭千古寺 前臨江水後依山
천인암두천고사 전임강수후의산
上摩星斗屋三角 半出虛空樓一間
상마성두옥삼각 반출허공루일간

반쯤 허공에 솟은 누각이 한 칸으로 보이네(靈鵠寺)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남호(南湖) 정지상(鄭知常:?~1135)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천 길 바위 꼭대기에 천 년 묵은 절이 있어 / 앞에는 강물을 내려다 보고 뒤로는 산에 기대었네 // 위로는 북두성을 만질 듯한 삼각지인 절집인데 / 반쯤 허공에 솟은 누각은 한 칸으로 보이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영곡사에서]로 번역된다. 영곡사는 충북 충주시 단원리 대림산에 있던 절로서 다른 이름으로는 단월대(丹月臺)라 통칭하기도 한다. 정지상의 시 중에서 영곡사를 시의 백미라는 말이 후대에 전해지는 것을 보아 시상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보아진다. 그 만큼 시의 완만한 등기곡선을 밑그림에 가득히 채워주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기구와 승구에서 완만한 등가곡선을 그리면서 선경이란 시상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천 길 바위 꼭대기에 천 년 묵은 절 앞에는 강물을 내려 보고 있으며, 뒤로는 산에 기대었다는 시상이다. 영곡사는 그 아래로 흐르는 단월강과 어울려 빼어난 전망을 갖추고 있는 서경을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강물을 내려 보면서 뒷산에 기대었다는 표현의 묘미에서 찾는다.

화자는 후정의 그림을 한껏 그려냈다. 위로는 북두성을 만질 듯한 삼각지인 절집인데, 반쯤 허공에 솟은 누각이 한 칸이란 시상이다. 삼초대를 북두칠성의 최고점으로 비유했던 점이 훌륭하고 결구에서 영곡사를 더욱 높은 불심의 경지로 숭모하는 서정을 노래한 시라고 해야 될 것 같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천년 묵은 절이 있어 강물 보며 산 기대네, 삼각지엔 절집인데 허공 솟는 누각 한 칸’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남호(南湖) 정지상(鄭知常:?~1135)으로 고려 중기의 문신이다. 정치에 깊이 관여하면서 음양비술에도 관심이 많아 묘청·백수한 등과 함께 삼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한편 서경출신으로 서울을 개경에서 서경으로 옮길 것을 몇 차례 주장하여 개경 세력과 크게 대립하기도 하였다.

【한자와 어구】
千刃: 천 길. 岩頭: 비위 꼭대기. 千古寺: 천년이나 된 절. 前: 앞에는. 臨江水: 강물에 임하다. 後: 뒤로는. 依山: 산을 기대다. // 上: 위로. 摩: (손 등으로) 어루 만지다. 星斗: 북두성. 屋: 절집. 三角: 삼각지. 半: 반절 쯤. 出虛空: 허공에 노출되다. 허공에 노출하다. 樓一間: 한 칸의 누각이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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