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07】

이차돈은 고구려 사람으로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교했다. 순교당시 순교자 이차돈의 머리가 날아와서 이 곳 고개인 금강산에 떨어져 장사지내고 나인들은 이를 슬퍼하여 좋은 땅을 가려 절을 세우고 이름을 자추사刺楸寺라 했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시인은 이런 역사적인 뜻을 지닌 대각국사의 사당을 찾아 만약 말세를 만나 불법을 행하기 어려우면  나 또한 임처럼 몸을 아끼지 않겠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厭觸舍人廟(염촉사인묘) / 대각국사 의천

천릿길을 돌아와서 문안을 드리는데
청산에 홀로 서서 몇 봄을 지냈는가
만약에 행치 못하면 몸 아끼지 않겠네.
千里歸來問舍人 靑山獨立幾經春
천리귀래문사인 청산독립기경춘
若逢末世難行法 我亦如君不惜身

약봉말세난행법 아역여군불석신

만약 말세를 만나 불법을 행하기 어렵다면(厭觸舍人廟)으로 번역해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석대각(釋大覺)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1055~1101)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천릿길 돌아와서 사인께 문안을 드리니 / 저 멀리 청산에 홀로 서서 몇 봄을 지냈는가? // 만약 말세를 만나 불법을 행하기 어려우면 / 나 또한 임처럼 몸을 아끼지 않겠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순교자 이차돈(異次頓)의 사당에서]로 번역된다. 이차돈은 염촉厭觸, 혹은 거차돈居次頓이라고도 했으며, 다소 애매하기는 하지만 태어난 해가 501년이라는 설도 있다. 어려서부터 성질이 곧아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으며, 일찍부터 불교를 신봉하였으나 신라에서 국법으로 불교가 허용되지 않음을 한탄하였고 그가 순교자였음을 누구보다 깊숙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 시적인 배경이겠다.

시인은 이차돈의 순교를 늘 안타깝게 생각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천릿길 돌아와서 사인께 문안을 드리니, 청산에 홀로 서서 몇 봄을 지냈는가를 되묻고 있다. 이차돈이 사인舍人의 직책에 있었음을 떠올리고 있다. 신라시대 십칠관등十七官等 가운데 열두째 등급인 대사大舍와 열셋째 등급인 사지舍知 벼슬을 통틀어 이르고 있음을 상기하게 된다.

화자는 이제 선인의 속 깊은 순교를 생각하면서 결연한 자신의 서정적인 의지를 밝히고 있다. 만약에 다시 신라 시대와 같은 말세를 만나서 심오한 불법을 행하기 어렵다면 화자 자신 또한 이차돈처럼 몸을 아끼지 않겠다는 시심으로 서정적인 지향세계란 큰 뜻을 내포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사인들께 문안 드려, 청산 봄을 몇 번 지나. 불법 행동 하지 않아 몸 아끼지 않겠다며’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1055~1101) 으로 고려의 고승이다. 호는 우세(祐世)이고 시호가 바로 대각국사(大覺國師)이다. 고려 제11대 왕인 문종의 넷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인예왕후 이씨였다고 한다. 고려 천태종을 창종한 고승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저서로 <대각국사문집> 등이 있다.

【한자와 어구】
厭觸: 순교자인 이차돈의 字, 千里: 천리 길. 歸來: 돌아오다. 問: 묻다. 舍人: 사인. 고려 시대 내사문하성 종사품 벼슬. 靑山: 청산. 獨立: 홀로 서다. 幾經春: 몇 봄을 지내다. // 若: 만약. 逢末世: 말세를 만나다. 難行法: 불법 행하기 어렵다. 我亦: 나 또한. 如君: 그대와 같이. 不惜身: 몸을 아끼지 않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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