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04】

흔히 중국과의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대가 당송명대唐宋明代가 아니었나 싶다. 교역도 활발했고, 진상품이 오고간 것만도 부지기수였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특히 조선은 명대엔 상전의 나라로 섬기기도 했다. 워낙 방대한 땅이었기 때문에 반란도 심했고 이민족이 나라를 세워 침략이 잦았지만 우리는 순수 한족과 가까웠다 그대는 부디 송나라가 멀다고 말하지 말게 머리를 잠깐 돌리면 오직 한 돛의 바람일 뿐이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入宋船上寄京中諸友(입송선상기경중제우) / 최사제 

천지에 경계가 어찌하여 있겠는가
스스로가 다르고 스스로가 같을 뿐
송나라 멀다 마시오 오직바람 뿐이라오.
天地何疆界    山河自異同
천지하강계      산하자이동
君毋謂宋遠    廻首一帆風
군무위송원      회수일범풍

 머리를 돌리면 오직 한 돛의 바람일 뿐이라네(入宋船上寄京中諸友)로 번역해 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최사제(崔思齊 : ?~1091)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하늘과 땅에 어찌하여 경계가 있겠는가 / 산과 내가 스스로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할 뿐인데 // 그대는 부디 송나라가 멀다고 말하지 말게나 / 머리를 잠깐 돌리면 오직 한 돛의 바람일 뿐이라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송나라로 들어가는 선상에서 서울 친구에게]로 번역된다. 고려의 주요 무역항은 벽란도碧瀾渡였다. 예성강은 황해도 고달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경기도와 황해도의 경계를 따라 흘러 황해로 든다. 고려 시대의 국도였던 개성과 가까이 위치하였던 관계로 이곳은 고려시대 제일의 하항이자 실질적인 유일의 국제 항구였다. 고려 시대에는 중국의 송나라 상인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하여 멀리 남양지방과 서역지방의 해상들까지 교역했던 곳이다.

시인은 이런 항구에서 송나라로 들어가는 선상에서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바로 고려의 무역항 벽란도에서다. 하늘과 땅에 어찌 경계가 있을 수 있겠는가. 산과 내가 스스로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할 뿐이라는 시심이 그것이다. 하늘과 땅의 나눔, 산과 내의 나눔이란 만나지 못한 이별이란 정한을 한껏 쏟아내고 있다.

화자는 이별의 아쉬움을 쏟나내면서 간곡한 한 마디의 깊은 심회와 생각을 담아내고 만다. 그대는 부디 송나라가 멀다고 말하지는 말게나, 생각이나 머리를 달리 돌리면 한 돛의 바람일 뿐임을 밝혀내고 있다. 그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한 줌 바람을 타고 떠나가거니 되돌아오는 길이란 짧은 거리임을 밝혀보였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하늘과 땅 경계 있나 산과 내에 다다르고, 송나라는 멀지 않네 한 돛대의 바람일 뿐’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양평(良平) 최사제(崔思齊:?~1091)로 고려 중기의 문신이다. 해동공자로 추앙받는 최충의 손자이고, 지중추원사를 지낸 최유선의 아들이다. 그의 아들은 또한 최약으로 알려진다. 1054년(문종 8) 과거에 급제한 뒤, 1081년 예부상서로 사은사가 되어 송나라에 다녀온 뒤 우산기상시가 되었다. 

【한자와 어구】
天地: 천지. 온 세상. 何: 어찌. 혹은 어찌하여. 疆界: 경계. 흔히 산천경계로 쓰임. 山河: 산과 내. 自: 스스로. 異同: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 君: 그대. 毋謂: 말하지 말라. 이르지 말라. 宋遠: (여기에서) 송나라는 멀다. 廻首: 머리를 돌리다. 一帆: 한 돛. 한 배의 돛대. 風: 바람.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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