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03】

전쟁을 했다하면 한 쪽의 승리와 다른 한 쪽의 패배로 엇갈린다. 승자만이 살아남고, 패자는 멸망하기 마련이다. 전쟁을 독려했던 큰 스승일지라도 멀리서 보내고 나면 뒷일이 궁금함은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공을 떠나서 우리의 상황은 늘 그랬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소망 때문에도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한번 전쟁터로 나간 수레의 행렬과 이별하고 해가 다시 오는데, 전쟁의 공도 없이 빨리 오는 것일랑 원치 않는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代人寄遠(대인기원) / 최승로

전쟁터에 나간 수레 이별하고 오는데
몇 번이나 누대 올라 기대어 보았는지
사랑이 빨리 오는 것 원하지를 아니하오.
一別征車隔歲來 幾勞登覩倚樓臺
일별정거격세래 기로등도의루대
雖然有此相思苦 不願無功便早廻
수연유차상사고 불원무공편조회

전쟁의 공 없이 오시는 것 원치 않습니다(代人寄遠)로 번역해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최승로(崔承老:927~989) 고려 초 문신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한번 전쟁터로 나간 수레를 이별하고 해가 오는데 / 몇 번이나 애써 누대에 올라 기대어 바라보았는가 // 비록 사랑의 괴로움이 이와 같을지라도 / 전쟁의 공도 없이 빨리 오는 것일랑 원치 않는다]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전쟁터에 나간 임에게 붙임]로 번역된다. 인류의 변천사는 전쟁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전쟁은 인류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바꾸어 놓았다. 전쟁터로 끌려간 임을 보고파 그리는 시가 많다. 밤마다 보채는 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고, 바람에 날리는 낙엽 소리가 귓가를 적실 때도 그런 생각들을 했다.

시인은 주체할 길 없는 임의 소리가 듣고팠고, 임의 얼굴이 보고팠음을 여과 없이 노정해 보인다. 한번 전쟁터로 나간 수레를 이별하고 해가 다시 떠서 오는데, 몇 번이나 애써 누대에 올라 기대어 바라보았는가라는 시심을 발휘했다. 수레를 타고 전쟁터로 나갔던 그 뒷모습은 아련했을 것이며, 몇 번이고 뒤돌아보면서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을 지도 모른다. 전쟁의 비참함과 인간이별의 고통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화자는 전쟁이란 비통한 심정을 그대로 토해내고 있다. 비록 사랑의 괴로움들이 이와 같을지라도 전쟁이란 공은 아무 것도 없이 빨리 오는 것일랑 원치 않는다고 했다. 전쟁으로 인한 이별을 괴로움이라고 했고, 이 괴로운 전쟁을 진정 원하지 않는다는 고통의 하소연 한 마디를 쏟아내고 만다. 수많은 전쟁에서 여인들이 몸으로 겪었던 성폭행 등도 이제 생각할 일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한 번 이별 해가 바뀐데 누대 올라 기대보네, 괴로움이 이 같으니 전쟁 공은 원치 않소’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최승로(崔承老:927~989)로 고려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토호들의 횡포로 인한 세공 수납의 폐해를 시정토록 12목을 설치하면서 목사를 상주시켜 중앙집권적 체제를 갖추도록 했던 공을 인정받았다. 988년 문하수시중에 승진하고 청하후에 봉해지기도 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한자와 어구】
一: 한 번. 別征車: 전쟁터에 나간 수레와 이별하다. 隔歲來: 해가 다시 오다. 幾勞: 몇 번이나 애써서. 登覩: 올라가 바라보다. 倚樓臺: 누대에 기대다. // 雖然: 비록 그러나. 有此: 이 같다. 相思苦: 사랑의 괴로움. 不願: 원치 않는다. 無功: (전쟁의) 공은 없다,. 便早廻: 다시 일찍 돌아오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저작권자 © 홍천뉴스 / 홍천신문 홍천지역대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